[영화 감상/영화 추천] <Women Talking(우먼 토킹)>(2022)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Women Talking(우먼 토킹)>(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는 2010년, 배경은 북아메리카의 어드메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채로 살아가는 메논파 (기독교의 한 일파) 커뮤니티이다. 그곳에선 끔찍한 일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데, 커뮤니티 내 여성들이 동물용 진정제를 주입당해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성폭행당한다는 것이다. 물론 범인은 같은 종교 커뮤니티 내의 남성들이었다. 이들은 체포되어 가장 가까운 도시로 연행되었고, 메논파 커뮤니티에 속하는 대부분 남자들은 이 가해자들을 보석으로 풀어주기 위해 그 도시로 간다. 그들이 자리를 비울 이틀간, 같은 커뮤니티의 여성들에게 이 범인들을 ‘용서’하거나 아니면 커뮤니티를 떠나라는 최후통첩을 내리고서 말이다. 여성들은 그냥 이를 묵인하고 여기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아니면 싸울 것인지를 두고 투표를 하는데, 공교롭게도 세 가지 선택지 모두 같은 표가 나왔다. 그래서 이 커뮤니티 내 모든 여성들의 뜻을 대표할 열한 명이 토론을 통해 결정을 내리기로 한다. 관객은 이 열한 명의 ‘여성들이 이야기하는(women talking)’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미리엄 테이브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국내에도 ‘위민 토킹’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나와 있다). 사라 폴리는 내가 <Stories We Tell(우리가 들려줄 이야기)>(2012)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아니, 이렇게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감독이 있다고!?’ 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아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알게 되고, 감독 이름을 보자마자 신뢰가 샘솟았다. 그래서 봤는데, 역시나 최고였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여성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이 메논파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이 성폭행 사건들로 임신한 여성 역시 한둘이 아니었다)은 정말 어이없게도 가해자들을 ‘용서’할 것을 강요받는데, 용서는 가해자가 자발적으로 우러나서 피해자에게 구해야 하는 거고, 또한 피해자도 자발적으로, 그럴 수 있을 때 너그럽게 해 주는 게 맞는다. 그런데 뻔뻔하게도 가해자를 옹호하는 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강요하다니! 그건 진정한 용서도 아닐 뿐더러, 문제 해결 및 앞으로 문제 예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한 명의 대표자들 중 (정확히는 드러나지 않지만) 대부분이 이 성폭행의 피해자들이다. 어떤 여성은 분연히 들고 일어나 싸우자고 하고, 어떤 여성은 그냥 떠나자고 한다. 조금 더 지혜로운 나이든 여성은 싸우기 전에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 일종의 목표 또는 청사진을 세워 보자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본인과 자녀들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또한 자신들의 신념, 믿음을 유지해 나갈 권리도 중요하다고 꼽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대목이다.
청소년이거나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은 성폭행의 트라우마로 인해 때때로 공황 발작을 일으킨다.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도 피운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 여성은 ‘다들 공격당했는데 왜 그 일로 인해 너만 관심을 받으려고 하냐’며 못마땅해하고, 공황 발작이 있는 여성은 ‘관심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나는 그냥 아픈 것이다’라며 항의한다. 성폭행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아 삶이 크게 달라진 여성은 또 있는데, 한 여성은 자신의 남자 형제에게 근친상간 성폭행을 당한 이후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이름도 ‘멜빈’으로 바꿨고, 머리도 짧게 잘랐으며, 옷도 남자처럼 입고, 오직 어린아이들에게만 말하며, 다른 성인들에게는 묵언 수행을 하듯 절대 말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남성은 딱 한 명뿐인데, 벤 휘쇼가 맡은 ‘어거스트’다. 그는 이 커뮤니티에서 보기 드문 지식인으로, 무려 대학까지 나왔이다. 대학 졸업 후 커뮤니티로 돌아와 남자아이들(커뮤니티 내에서 여성들은 글자조차, 기본적인 읽고 쓰기조차 배우지 못하게 금지돼 있다)을 가르치는데 이 토론회에서 그는 여성들이 하는 말을 받아적는 서기 일을 맡았다. 그는 열한 명의 여성들 중 하나인, 심지 굳고 강인한 오나(루니 마라 분)를 사랑하고 있다. 오나 역시 그를 사랑한다. 오거스트가 오나에게 청혼도 했었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더 이상 나로서 너를 사랑할 수가 없다’라며 오나가 거절했다. 결국 대토론회를 통해 이 커뮤니티의 여성들은 이곳을 떠나는 것으로 결정이 나자, 오거스트는 그들(물론 그중에 제일 소중한 오나)이 떠나고 난 후 자살하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살로메(클레어 포이 분)는 그에게 자살하지 말고, 살아남아서 남자아이들을 가르치고 앞으로는 이런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으라고 당부한다.
오거스트의 존재는 여성들과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형태의 남성을 보여 주는 상징과도 같다. 앗, 남자 캐릭터가 상징이라고요? 문학 속 여성 캐릭터가 고뇌하는 또는 실존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상징’이었던 경우는 쌔고 쌨지만 이런 경우는 참 드물지 않습니까! 오거스트는 부드럽고, 다정하며,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들의 대표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티 내의 다른 남자들이 다 성폭행범들의 편을 들러 갔을 때 (아직 성인이 안 된 남자애들 빼고 성인들 중엔) 오거스트 혼자 남아서 여성들과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여성들이 말할 때 끼어드는 법이 없고, 자신이 주제넘게 나섰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사과한다. ‘(이건 여러분들 일이니까) 제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할 정도로 겸손한데, 그렇기 때문에 네 생각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 본 적 있느냐는 한 여성의 질문에 침묵하며 가만히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네 생각 따위 안 중요해’ 같은 말을 많이 들어 왔고 또 그런 경험을 일상적으로 겪었으니까. 오거스트는 감히 자기가 말을 얹을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다.
결국 커뮤니티를 떠난 여인들은 새곳에 정착한다. 아주 정확히 묘사되는 건 아니지만, 영화의 초반과 끝에 잠시 오나의 출산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의 내레이션을 맡은 소녀 네자(리브 맥닐 분)는 이 아이의 삶은 그 전과는 다를 거라고 말한다. 폭력적인 남성들로부터 벗어났으니 이 아기는 안전하게 잘 자라겠지. 하지만 이전 커뮤니티는? 글쎄, 오거스트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서 남자아이들을 계속 가르치더라도, 그곳 남성들이 대다수가 폭력적이고 여성 혐오적이라면 과연 오거스트의 가르침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모르겠다. 오거스트는 여성들을 존중하라고 가르치겠지만 그 반대를 가르치고 또 몸소 직접 보여 주는 남성들 사이에서 살다 보면 그런 마음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뭐, 여성들을 자기네들이 몰아낸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남자들은 불쌍하지도 않다.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고 교육 수준이 높아져서 ‘이기적’이 되었고, 애를 안 낳고 희생을 안 한다고 지껄여대는 한심한 남자들이 아무리 저출산(이 용어도 따지고 보면 ’저출생’이 맞는 거지만)이 어쩌고저쩌고 해 봤자, 결혼이나 출산을 할 마음이 전혀 안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커뮤니티는 망하든지 말든지.
사실 이 영화에 관해 리뷰를 쓰고 싶긴 했지만, 동시에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다루는 주제와 이 영화가 그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 각 등장인물들의 스토리 등등, 이야기거리는 참 많은데 그걸 내가 잘 풀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걸 다 하나하나 짚어내려면 영화를 한두 번 봐서 되는 게 아니라 세네 번은 보고 또 원작 소설도 깊게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안에 담긴 주제 의식이랄지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풍부해서 감히 내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영화가 진짜 볼 가치가 있다는 것.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남녀 불문하고, 나이 상관없이 정말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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