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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Overboard(환상의 커플)>(1987)

by Jaime Chung 202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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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Overboard(환상의 커플)>(1987)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Overboard(환상의 커플)>(1987)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급 요트에 타고 있는 어떤 백만장자 커플이 있다. 조안나 스테이튼(골디 혼 분)은 남편 그랜트 스테이튼 3세(에드워드 허먼 분)와 엘크 코브라는 바닷가 마을에 잠시 닻을 내리고, 요트가 수리되는 동안 기다리는 중이다. 조안나는 이때 ‘급히’ 목수를 부르는데, 목수 딘 프로핏(커트 러셀 분)은 고작 옷장과 구두 수납장을 만들기 위해 자기가 급히 호출됐다는 점에 어이 없어한다. 어쨌거나 그는 돈을 준다니까 일을 시작했는데, 일을 다 하고 나니까 조안나는 옷장과 구두 수납장이 (자기가 원하는) 삼나무가 아니라 오크로 만들어졌다며 돈을 줄 수 없다고 한다. 딘은 애초에 삼나무로 만들라고 미리 말해 주지도 않은 데다가 오크도 충분히 튼튼하고 바다의 습기를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하며 둘은 옥신각신한다. 조안나는 화가 나서 딘의 연장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딘은 화가 난 채로 요트를 떠난다. 그날 밤, 조안나는 덱에 깜박하고 놔두고 온 결혼 반지를 찾으러 올라갔다가 균형을 잃고 바다에 떨어진다. 다행히 그녀는 쓰레기를 싣고 있는 배에 의해 구조되지만, 단기 기억 상실에 걸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의료진과 경찰에게 짜증만 내고 고압적으로 구는 조안나. 어떻게든 이 재수 없는 여자를 보내 버리고 싶은 의료진은 이 여자를 아는 사람에게 사례를 하겠다고 제시한다. 이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 딘. 그는 아내 없이 아들만 넷이 있는데, 조안나를 자기 아내라고 속이고 데려와 집안일도 시키고 애도 돌보게 하면 (자기에게 무례하게 굴고 임금도 지불하지 않은 데 대한) 복수가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안나는 ‘애니’라는 이름의 자기 아내라며 속이고 자기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 영화의 리뷰를 쓰기는, 이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괴로웠다. 이 영화가 얼마나 ‘구린지’를 다시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당신이 무엇을 웃기다고 생각하는지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와 관련이 있다’라는 요지로 글을 쓴 적이 있는데(바로 이 글), 이 영화가 바로 그 정확한 예이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웃기다’ 또는 ‘감동적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그런 사람과 별로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 있는 여성 혐오를 캐치하지 못하고 그것에 혐오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나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차근차근히 설명해 보자. 나는 이 영화를 현대판 <말괄량이 길들이기>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건 그만큼 유독한 여성 혐오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일단 조안나는 초반에 아주 오만하고 재수 없는 부잣집 마나님으로 그려진다. 딘은 조안나를 위해 일을 해 주고도 임금을 못 받은 것도 물론 억울하지만, 그 여자가 자기를 돈 없고 교양 없고 더러운 하층민 취급을 하는 게 화가 났기에 그녀를 자기 ‘아내’라고 속이고 데려와 일을 시키면 적당한 복수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안나를 ‘애니’라고 부르며, 온갖 집안일을 시키고 애들 넷(다들 장난이 지나치고, 심지어 막내는 초등학교 저학년인데도 글을 아직 못 읽는다. 가정에서 관심과 훈육을 못 받은 애들의 전형) 을 키우게 만들며, 심지어 잠도 자기랑 같은 침대에서 못 자게 한다. 이제 조안나가 아닌 ‘애니’가 된 이 여인은 잠도 거실 소파에서 자는데, 자기 몸에 맞는 옷도 없다(딘이 조안나를 데리고 오기 전, 애들을 시켜 중고 옷을 사 오라고 시킨 덕분이다). 딘은 애니가 예전엔 뚱뚱했었다며, 외모적으로도 자신감을 잃게 만든다. 뭐든 조안나가 불만을 가지면 ‘자기는 예전엔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아 했어’라며 가스라이팅한다.

이런 얘기를 하자니 너무 우울해지니 스토리 진행에 빨리 감기를 해 보자.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녀의 진짜 남편 그랜트가 그녀를 찾으러 왔을 때 (그것도 조안나의 엄마가 조안나와 왜 연락이 안 되냐고 자꾸 채근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다) 조안나는 마침내 모든 것을 기억해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안나는 자신이 딘을 사랑한다는 (이게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니면 뭐지?) 사실을 알아차린다. 조안나는 자신의 호화 요트에 돌아와서도 예전처럼, ‘애니’였을 때처럼 행동한다. 예컨대 고급 샴페인 대신 맥주의 뚜껑을 거칠게 따서 마시는 식으로. 그랜트는 이혼을 거부하지만, 조안나는 딘이 자기 아들들과 조안나를 ‘구하러’ 온 걸 보고 바다에 뛰어든다. 당연히 구조 요원들이 그녀를 구하고, ‘애니’와 딘은 사랑을 확인한다. 좋은 소식? 사실 부자인 건 그랜트가 아니라 조안나였다! 딘의 아들들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물건들 목록을 작성하고, 딘은 당신처럼 모든 걸 다 가진 여자에게 감히 내가 뭘 줄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애니’는 ‘딸’이라고 대답하며 영화는 끝. 아니 신이시여, 도대체 왜 또 다른 불쌍한 여자애를 이 세상에 데려오고 싶어 하는 거지? 조안나, 아니 ‘애니’, 너처럼 이 여성 혐오적인 사회에서 가스라이팅 당하며 불쌍하게 살라고?

그 시대에는 이 영화가 ‘재미있다’, ‘웃기다’라고 여겨졌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여전히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웃긴 코미디 영화 중 하나” 같은 소리를 운운할 수가 있는가. 시대가 바뀌었는데! 내가 여성이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신의 몰락한 ‘처지’에 순응하며 가정 주부로서 남편과 애 넷을 뒷바라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봐야 한다고? 그럴 거면 내가 뭐하러 영화를 보냐. 현실에도 그런 일은 쌔고 쌨는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건, 부분적으로는, 현실 도피인 점도 있는 건데 현실과 영화가 똑같은 걸 같으면 도대체 뭐하러 영화를 보냐! 이 영화를 요즘 시대에 봐야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경고성 이야기(cautionary tale)로만 봐야 할 것이다. 이 영화를 안 보는 게 제일이겠지만, 꼭 봐야 한다면 제발, 비판적인 사고를 견지하고 조심해서 보기를 바란다.

➕ 트리비아: 큰 인기였던 2006년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한예슬, 오지호 주연)이 바로 이 영화의 리메이크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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