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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조엘 H. 코언, <마라톤에서 지는 법>

by Jaime Chung 2018.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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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조엘 H. 코언, <마라톤에서 지는 법>

 

 

저자 조엘 H. 코언은 유명 만화 <심슨 가족(The Simpsons)>의 작가 중 한 명으로, 탄수화물 간식이 가득한 일터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농담을 쓰는 일을 한다. 

운동? 어릴 적부터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래서 그는 살이 많이 쪘고, 몸 상태는 당연히 형편없었다(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트로피보다도 턱을 더 많이 가진 나 같은 게으른 덩어리').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달리기를 해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그런 그가 26.2마일(약 42.195km)을 달리고도 '진' 이야기이다.

 

일단 <마라톤에서 지는 법>이라는 제목부터 잠시 설명하겠다. 그는 2013년, 생애 처음으로 도전한 마라톤에서 26,782등으로 들어왔다.

그 앞에 26,781명이 있었다는 말이다. 열심히 연습한 게 맞는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낮은 등수다.

하지만 이 책은 전혀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우스꽝스럽지 않다. 물론 웃기고 재밌긴 하다. 하지만 그가 대단치 않다거나 하찮다는 의미의 '우습지는' 않다.

이는 첫 번째, 그 어떤 올림픽 출전 선수 못지 않은 '스포츠 정신', 그리고 두 번째, 그의 훌륭한 유머 감각 덕분이다.

그는 캐나다 출신인데, 캐나다인들이 흔히 그렇듯 아이스 하키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는 아이스 링크에 나가 경기를 한다. 실력은? 그의 말마따나 "거지 같다". 그래도 그는 꾸준히 아이스 하키를 했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그는 몸을 움직이기를 죽기만큼이나 싫어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 앱에서 정해 주는 프로그램대로 달린다.

달리다가 넘어져서 또는 다리가 너무 아파 절뚝이며 집/차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일어나도, 훈련을 관두지 않는다. 러너들이 흔히 마라톤 전에 하는 것처럼 훈련을 쉴 때 말고는.

이거야말로 영화 <독수리 에디(Eddie the Eagle, 2016)>로도 유명한, 영국의 스키 점프 선수 에디 에드워즈(Eddie Edwards) 뺨치는 정신 아닌가.

잘하고 못하고가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그냥 그걸 즐기고, 또 규칙에 따라 정당하게 경기에 임하면 되는 거지.

나는 <독수리 에디>를 봤을 때도 '와, 사람이 정말 승패에 무관하게 그냥 스포츠를 즐기고 사랑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는데(그의 끊임없는 실패는 그를 응원하는 모든 이를 안타깝게 하지만, 그는 절대로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실제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안타깝다) 조엘 H. 코언에게서 그 순수한 '올림픽 정신'을 다시 보았다. 진짜 가슴이 찡하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그의 성적은 4시간 26분 3초로 딱히 내세울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하고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

생각해 보자. 4시간 안쪽으로 마라톤을 완주하는 건 물론 대단한 일이지만, 꼭 그래야만 마라톤에 참가하는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의 말을 살짝 인용해 보자(그가 오프라 윈프리를 언급하는 것은, 오프라가 마라톤을 4시간 반에 걸려 달린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 동호인들 중 순정주의자들은 내가 미소 지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기억나는지 모르겠지만 4시간이 넘는 기록은 좋은 기록이 아니고, 덧붙여 나같이 느린 러너들은 진짜 러너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네 시간이 넘어 시계를 멈추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마라톤 완주'라는 것의 위대함을 감소시킨다. 이들 무리는 심지어 오프라한테도 분노하는데, 대중에게 '느린' 마라톤을 달리는 것이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공정해지기 위하여 나는 이 순정주의자들의 주장을 검토해보았고, 오랜 생각 끝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구축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네 똥 굵다.' 요약 없는 긴 답변은 다음과 같다.

달리기에 관한 엘리트 중심적 관점은 자신들이 최고의 수준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도 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순정주의자'들은 엘리트 러너들이 두 시간에 뛰는 마라톤을 자신들이 세 시간씩 걸려 달리는 것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수용 가능한'의 최저 기준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는 누가 정하는가? 다른 스포츠는 어떤가? 100타를 깨지 못하는 사람들이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하는가? 자선활동을 조금씩 시작하려는 사람은 어떤가? 남을 돕는 일에 신경도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6개월 후를 목표로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5개월 안에 할 수 있다면? 이런 허섭스레기 같은 예시를 내가 드는 것이 허용되는 안 되는 건가? 다른 사람(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예시를 둘 수 있다면?

소위 '순정주의자'라는 사람에게 한번 해보라고 요구하고 싶다. 마라톤 대회의 결승선에 서서 느린 러너들에게 당신들의 마라톤은 의미가 없다고 말해 보란 말이다. 나는 그들의 마라톤이 실로 당신의 마라톤보다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겠다. 그들은 나 같은 사람들, 즉 마라톤을 뛸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가 마라톤을 뛴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난번에 한 것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으로 어떤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 사람들이다.

요점은 이렇다. 나와 동지 러너들이 한 일에 대해 모든 이들이 더불어 흥분해준 것은 레이스 자체만큼이나 신나는 일이었다. '우수한' 또는 '우수하지 못한' 등의 표현으로 마라톤 레이스를 한정하려는 시도 한 번 없이 그들은 성취 그 자체를 더 공고하게 해주었다. 그러니 순정주의자들이여, 엿이나 잡숴.

 

옳소! 순정주의자들은 엿이나 까잡숴!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간혹 헬스장에 비만인 사람이 나타나면 '저 몸으로 어떻게 운동을 한다고?' 또는 '네까짓 게?'라며 수군수군대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정말 멍청한 짓이다.

비만은 병이다. 폐 질환이나 기타 질환으로 몸 상태를 낫게 하려고 병원에 온 사람을 비웃지는 않을 건 아닌가. 근데 왜 몸 상태를 낫게 하려고 헬스장에 온 사람을 비웃는단 말인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분야에서든 엘리트주의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시작해서 뭘 잘 알거나 잘한다면, 뿌듯해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자격이 있다.

그렇지만 초보들이나 잘 못 하는 사람들을 비웃는다면, 그건 잘못이다. 남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놀리기는 왜 놀려?

 

이 책이 정말 유쾌한 두 번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 저자의 유머 감각 덕분이다.

그는 자기를 비하하는 유머를 잘 구사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밖이 어둡다는 것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했는데, 예를 들면 우리 이웃들 중 아무도 내가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이다. 갓 깨어난 이웃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분필로 그려진 인간의 형태와 보도 주위에 둘러진 경찰테이프가 다일 것이다. 나는 헛된 신체적 노력 끝에 죽은 후일 테니까. 궁금증이 솟구쳤다. 분필로 그려진 뱃살 모양을 보고 사람들이 그게 나라는 걸 알까? 나를 이런 종말로 이끈 신체적 고문을, 분필로 그려진 내 몸의 윤곽이 정확히 표현해줄 것인가? 베수비우스 화산이 분화했을 때 폼페이 시민들도 같은 질문을 했겠지.

 

내가 달리기에 대해 느끼는 것은 내가 글쓰기에 대해 느끼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하는 동안에는 싫어하지만, 일단 결과물을 보면 그것이 쓰레기라 할지라도 뿌듯하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 글쓰기가 거의 언제나 쓰레기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느낌이 오시려나? 저자가 끄적끄적 그린 듯한(디자이너에게 도움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삽화도 무척 귀엽고 웃기다.

 

삽화 그림체는 이런 식이다. 귀여움ㅋㅋㅋㅋ

 

이 책에서 저자는 초보 러너, 이제 막 달리기는 시작하는 러너를 위해 달리기를 위해 갖춰야 할 것(달리기 앱, 운동복 등)에 대한 간략한 가이드도 제시하고, 또한 뒤에는 달리기를 들으면서 들을 만한 팟캐스트도 추천한다.

꼭 달리기뿐이 아니라 새로운 일, 못하는(또는 못할 거라 확신하는) 일을 시도해 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읽어도 무척 좋을 것 같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으시라. 진짜 그의 시도야말로 모두의 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성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태도를 우리가 보고 배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어쨌든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하는 일을 그 결과보다는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지, 즐기는지, 또는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지 등 조금 더 '내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마라톤 따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읽으면 웃음과 감동, 용기, 영감 등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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