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위르겐 쉐퍼,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허술하며,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는 점을 보여 주고 궁극적으로 실수를 받아들이는 문화(사회적으로) 및 태도(개인적으로)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놀랍게도, 정확함과 완벽함에 목숨 걸 것 같은 독일인이 썼다!
이야기책이 아닌 논픽션 책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나이지만(나는 책을 읽고 나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보다는 전반적인 인상이 더 기억에 남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을 잘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 보겠다.
이 책은 저자가 저지른 한 가지 실수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왜 이런 실수가 일어나게 된 것인지 간단히 설명하면서, 사실 실수를 방지하려고 애쓰다가는 오히려 실수를 방지하는 데 실패할 위험성도 훨씬 높아진다고 말한다.
실수를 방지하는 데 더욱더 애를 쓸수록 우리의 작업 기억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도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스트레스는 기억력에 쥐약이다!).
실수와 오류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일인진대, 우리는 왜 이렇게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일까?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는 실수를 유발하는 사고의 함정과 인지 왜곡 사례를 살펴본다.
3장에서는 무결점 문화, 즉 실수에 적대적인 시스템이 어떻게 어떤 결과를 미치는지를 다룬다.
4장은 잠재적 실수를, 5장은 과학이 실수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다룬다.
제일 내 마음에 든 것은 6장인데, 여기에서 저자는 어떻게 '자연이 실수를 사랑하'는지 돌연변이를 통해 보여 준다.
마지막 7장과 8장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사회뿐 아니라 개인이 실수를 포용하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4장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특히 흥미로운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국민에게 안전한 식수를 제공하기 위해 우물을 파는 봉사활동이 자주 실시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이 우물물에 수질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0년대가 되어서야 연구자들은 이 물에 비금속 물질인 비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서는 최대 8,000명이 과거에 열성적으로 파놓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사용한다. 세계 보건 기구는 그들 중 최대 10%가 암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 이렇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우물을 파는 것처럼 간단한 일조차 힘겨워한다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미국 중환자실 전문의 피터 프로노보스트(Peter Pronovost)는 병원 내 감염을 막기 위해, 존스홉킨스 대학 병원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다섯 가지 항목이 담긴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고안했다.
1.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2. 환자의 피부를 소독해야 한다.
3. 모든 환자에게 멸균 침구를 제공해야 한다.
4. 스스로 멸균 마스크, 두건, 가운,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5. 카테터를 삽입한 뒤에는 삽입 지점을 멸균 처리해야 한다.
사실 이건 모든 의사들이 알고 있는 기본 지침일 뿐이다. 하지만 간호사들에게 체크리스트에 따라 병원 내 실무를 점검해 달라고 부탁한 결과, 의사들이 세 번 중 한 번꼴로 이 절차 가운데 한 가지를 잊어버리거나 빠뜨리는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 경영진이 간호사들을 독려해 체크리스트 준수 여부를 감독할 권리를 주자 놀라운 결과나 나왔다.
열흘이 지난 뒤 감염률이 10퍼센트에서 0퍼센트로 떨어졌다. 연구진의 계산에 따르면, 그 후 1년 동안 체크리스트는 43건의 감염을 막았고, 여덟 명의 목숨을 구했으며, 치료 비용을 200만 달러 절감하는 효과를 거뒀다. 중환자실 입원 기간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 그런데 단순한 설문지 한 장이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의력을 높이고 오류 비율을 현저하게 낮추는 데 명백하게 큰 도움이 된 것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은 필수적인 규율을 준수하기만 하면 지금도 여전히 극도로 복잡한 업무, 예컨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이미 죽어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수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다.
6장의 돌연변이 이야기도 잠깐 보자.
진화는 자연이 오류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 주는 매혹적인 예다. 추측컨대, 오류 없이는 진화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모든 진화의 시작에는 재생산 과정에서 일어난 단순한 복사 오류, 즉 돌연변이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 종류의 오류는 다시 복구된다. 여의치 않을 경우 그런 오류들은 생명체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번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생존에 성공하고 후세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는 돌연변이들이 거듭 존재한다. 모르긴 해도 그런 돌연변이로부터 "뾰족 튀어나온 부리를 흔들어대는, 뼈에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가벼운 공룡들이" 생겨났을 것이라고 바이츠제커는 말한다. 처음 그런 돌연변이들이 출현했을 때는 아마도 자연의 애석한 오류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 조건들이 이런 '오류'를 승인한다. 그렇게 되면 '오류'는 '성공 스토리'로 탈바꿈한다. 만약 운석이 지구로 추락한다면, 과거에 '오류'로 간주되었던 특징을 유전형질 속에 지니고 다니는 생물 종들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예는 우리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겸상 적혈구 빈혈은 유전 질환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혈류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헤모글로빈 유전자 돌연변이가 열성으로 후세에 유전된다. 한쪽 부모에게서만 이런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이형접합체heterozygous'를 형성하여 심각한 유형의 말라리아를 견뎌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는 오류로 간주되는 것이 아프리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말마따나 "결코 야무지지 못한 행동에 대한 변론서가 아닐뿐더러, 사기나 고의적인 실수에 대한 변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오히려 실수가 얼마나 인간적인지를 보임으로써 삶에 다소간 위로를 전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가 감정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일에 대한 자신들의 열정을 실수, 두려움, 강박관념이 빚어낸 감정적 연쇄반응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의식적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판단한다. 한편으로 완벽주의자들에게 도움을 모색하려는 시도 자체가 자신이 패자라는 사실에 대한 최종적인 고백을 의미한다. 이것 또한 완벽주의의 게임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는 시도, 즉 자신의 약점을 지속적으로 감추려고 하는 시도. (3장에서)
완벽주의가 삶을 더 낫게 만들기보다는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걸 본인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다면 이 책의 서문 끝에 나오는 다음의 경구를 기억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실수가 허용되는 곳에서만 우리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않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거나,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을까 두려워서 완성을 미루는 분들은 아래의 말도 마음에 새기면 좋겠다.
"완성된(done) 것이 완벽한(perfect) 것보다 낫다." 심지어 라임도 맞는다!
(내가 완벽한 글을 쓰고자 했다면 나는 이 포스트를 쓰지 못했을 것이다. 완벽주의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이로도 입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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