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Idea of You(너란 관념)>(2024)
16살짜리 딸 이지(엘라 루빈 분)가 있는 40세 이혼녀 솔렌(앤 해서웨이 분)이 가장 ‘핫’한 보이밴드 ‘오거스트 문’의 멤버 헤이스 캠벨(니콜라스 갈리친 분)과 연애하는 로맨스 영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보이밴드 ‘원 디렉션’ 출신 해리 스타일스를 대상으로 한 팬픽션이 이 영화의 기반이다(저자는 직접적으로 모델이 해리 스타일스라고 밝힌 적은 없는데, 많은 이들이 헤이스 캠벨과 해리 스타일스 사이의 공통점을 근거로 스타일스가 모델일 거라고 추측한다). 아마존 프라임에 신작이라고 뜨길래 볼까 말까 고민하면서 봤는데, 음… 내 안의 케이팝 팬이 이걸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일단 헤이스와 솔렌이 처음 만날 때부터 헤이스가 엄청 적극적으로 솔렌에게 플러팅을 한다는 점이 내 안의 케이팝 팬 걸의 쿠크다스를 깼달까… 솔렌은 이혼한 남편 다니엘(리드 스캇 분)을 대신해 보호자 격으로 딸 이지를 코첼라에 데려다준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어느 트레일러를 화장실이라고 착각하고 들어갔는데 하필 거기가 제일 잘나가는 ‘오거스트 문’의 멤버 헤이스 캠벨이 쓰는 개인 트레일러였던 것. 이놈은 모르는 여자가 자기 트레일러 화장실을 쓰겠다고 하는 데 잠시 당황하지만(물론 이 점은 당황할 만하다) 곧 앤 해서웨이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겨 플러팅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솔렌이 자기는 딸이랑 같이 왔는데, 원래 ‘애 아빠’가 딸을 여기 코첼라에 데려다 줬어야 한다고 말하니까, 헤이스는 ‘애 아빠? 남편은 아니고요?’ 하고 솔렌이 싱글인지부터 탐색한다. 아니, 너희 진짜 글자 그대로 방금 만났거든! 솔직히 앤 해서웨이는 그 나이에도 아름다우니까 한눈에 반하는 게 이해가 되는데 내 안의 빠순이는 ‘우리 오빠’가 그렇게 쉽게 적극적으로 외간 여자에게 뻐꾸기를 날리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다… 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하면 안 돼? 😫
게다가 이놈은 두 번째 만남에 솔렌의 갤러리(솔렌은 예술품을 판매하는 중개인이다)에 불쑥 나타나는데, 갤러리 밖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대는 걸 보고 너무 당연하고 익숙하다는 듯이 행동한다. 아니, 슈퍼스타가 가는 데 팬들이 따라가는 건 당연한 일인데, 여자에게 작업 걸러 갈 때는 좀 숨고 사람들도 피하고 좀 그래라! 연애를 평생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그렇게 대놓고 하지 말라고! 도대체 왜 그렇게 당당해? 하긴, 서양에서는 ‘보이밴드’라는 놈들이 대놓고 여자들이랑 데이트하고, 공개 연애하고 그러더만. 하… 케이팝 팬은 이런 문화 차이에 큰 충격을 받아서 이 영화를 그냥 ‘재미로’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까짓 연애, 해, 하라고! 근데 왜 꼭 그렇게 대놓고 해야 해? 😭 서양에서는 이렇게 대놓고 연애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나?
이쯤 됐으면 다들 예상 가능하겠지만 (따라서 스포일러라고도 말하기 애매하다) 헤이스와 연애를 시작한 솔렌은 파파라치와 대중의 끈질긴 눈길을 받는다. 그들이 포옹하거나, 같이 일광욕을 즐기거나, 키스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솔렌의 딸 이지는 학교에서 짓궃은 관심을 받아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예를 들어, 이지는 한 남학생을 좋아했고, 그 남자애랑 뭔가 좀 잘 되어간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그 애가 이지를 불러내서 한다는 말이, “너희 엄마에게 나 다음 달이면 18살 된다고 알려드려.” 이랬다고. 하… 이지 멘탈도 바사삭… 연예인이랑 사귀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관심과 악플에, 정확히는 그걸로 상처 받는 이지를 본 솔렌은 딸을 위해서라도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헤이스에게 이별을 고한다. 하지만 다들 아시죠? 어차피 로맨스 영화/소설에서 둘은 어떻게든 이어지게 돼 있다는 거. 어찌어찌해서 둘은 다시 이어지고 해피 엔딩. 참고로 영화 버전 엔딩은 원작 소설 엔딩과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어쨌거나 상관없었다. 해피 엔딩이면 됐지.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연예인과 사귀는 일반인이 경험할 악플이나 파파라치 세례가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는다면 둘은 나중에 또 똑같은 문제로 이별을 고민하게 되겠지만 말이다(이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떤 점에서? 차라리 헤이스가 아예 악플러들을 몇 명 본보기 삼아 고소해서 강력하게 ‘금융 치료’를 해 준다면 또 모를까).
이 영화의 ‘로맨스’적인 것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좀 해 보자면, 역시 이 영화는 여자들을 위한 영화다. 일단 40세 (딸까지 있는) 여자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부터가 그러하다. 자기 엄마가 자기가 좋아하던 밴드의 멤버(다행히 최애는 아니다. 딸의 최애는 로리라는 다른 멤버였다)랑 사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지는 ‘헤이스는 페미니스트야?’라고 묻는다 🤣 솔렌의 친구(오로지 솔렌이 헤이스와의 연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이를 물어봐주는 일만을 위해 존재하는 얄팍한 캐릭터라는 점이 좀 안타깝긴 하지만) 트레이시(애니 머몰로 분)는 솔렌이 헤이스와 사귀며 과도한 관심을 받아 힘들어하자 “사람들은 행복한 여자들을 싫어해”라고 말한다(맞는 말이다). 헤이스가 솔렌에게 그토록 빠르게 반하고 그녀에게 절절하게 매달리는 것도, 5년이 지나도록 그녀를 못 잊고 기다리는 것도 다 여성이 바라는 로맨스, ‘여성향’ 판타지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솔직히 말해, 이 영화가 <죽기 전에 봐야 할 영화 1001>에 수록될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분명히 해 두고 싶은데, 모든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다. (특히 여성들에게) 즐거움을 줬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남자들 취향인 영화는 남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다는 것 외에 별로 대단치 않아도 뭐라고 안 하잖아. 그러니 이 영화도 굳이 대단해야 할 필요가 없다. 여성 영화들은 다 명작이어야 한다는 것도 그냥 또 다른 멍에일 뿐이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제일 믿기 어려운 설정은 제일 잘나가는 보이밴드의 멤버 몸이 운동을 열심히 한, 탄탄한 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내가 너무 케이팝 보이 밴드 기준으로 생각하나?). 아니면 보이밴드라는 설정치고 춤을 잘 또는 많이 추는 것 같지 않다는 점?(물론 적당히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들은 있는데, 그 춤이란 게 어려워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니콜라스 갈리친 얼굴이면 됐지 뭐… 너무 케이팝 팬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고 즐기면서 본다면 괜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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