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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영주, <며느리 사표>

by Jaime Chung 2018.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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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영주, <며느리 사표>

 

 

결혼 이후 23년간 며느리 노릇을 한 저자가 어느 날 '며느리 사표'를 내고 며느리를 그만두기로 한 날을 시작으로, 그 전부터 저자가 어떻게 며느리가 아니라 한 여성, 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에세이집이다.

그간 열심히 며느리 노릇을 한 덕분이었을까, 마침내 '며느리 사표'를 내자 저자의 시부모님은 의외로 덤덤하고 차분하게 받아 주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일단 저자가 시부모님을 좋은 분들이라 생각하고 있음이 드러나고, 또 독자인 내가 봐도 좋으신 분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어머님이 당신이 이 집에 처음 시집 왔을 때 당신의 시어머님, 즉 저자의 시할머님에게 얼마나 구박을 받았는지 푸념을 하는 장면 등저자가 며느리로서 고생하는 모습이 많이 묘사되어 딱히 저자가 '시월드'를 안 겪어 봤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시부모님께 꽤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심지어 남편보다 시부모님을 좀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남편이 외도를 했다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는 아니지만.

 

어려운 내용도 아니고,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한 번은 어떤 의미로든 부딪혀야 할 결혼(비혼주의자라 해도 '너 결혼 왜 안 해?'라는 소리를 피할 수는 없으니까)의 현실에 대해 친한 언니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단 한 가지 단점을 꼽아 보자면, 분명 책의 분류는 에세이 또는 정치/사회 계열의 인문서로 되어 있으나, 읽다 보면 이 책의 정체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할 때 내가 기대한 것은, 저자가 '며느리 사표'를 내기 전까지 어떤 경험을 했으며, 또 어떤 연유로 며느리 노릇을 그만둘 생각을 했고 남편 또는 시댁의 저항에 부딪힐 때는 어떻게 이를 극복해 냈느냐 하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페미니즘 도서.

그런데 책을 읽어 나가니, 저자가 '며느리 사표'를 내고 나서, 또는 그 전후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꿈 분석'이라든지 '거울 분석' 등, 꽤나 심리학적인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자신이 한 개인으로 살기 위해 아들딸도 모두 독립시켰는데 자취를 하게 된 딸이, 또는 본인이 이러이러한 꿈을 꾸었다, 또는 자신이 결혼 전 회사에 다닐 때 외모 꾸미기에 치중해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 같은 여직원이 있었다(그렇지만 나중에 '남의 단점은 사실 나의 단점이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는 내용을 읽다 보면 내가 페미니즘 도서를 읽는 게 아니라 심리학 서적, 또는 자기 개발서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저자가 말하는 꿈이 아주 사적인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여성의 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이 있다든가, 아니면 본인이 개인적 자아를 개발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 꿈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긴 한다.

하지만 나는 꿈 해석은 어디까지나 잘 봐줘야 심리학적인 것이고, 페미니즘 도서에는 그런 것을 위한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다소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책 뒷쪽 몇 페이지에는 '직접 해보는 거울 작업'이 부록처럼 실려 있다. 저자는 이렇게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식으로 시댁 또는 남편과의 갈등을 해결하려 한 거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라면 일단 사회적 움직임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이 부분이 굉장히 뜬금없게 느껴질 수 있고 책의 전체적 평가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참고하시라는 의미에서 알려 드린다.

 

나도 굳이 따지자면 후자 쪽이므로 심리학적 또는 약간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자기 개발서적인 내용이 낯설었다.

그 내용 자체가 틀리다거나 신빙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걸 '며느리 사표'라는 페미니스트적인 제목을 단 책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지.

이 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단 이런 부분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나 생각하신 후 읽어 보심이 좋을 듯하다. 아니면 덜컥 사기 전에 빌려서 살펴보시든지.

책의 독특한 진행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서 섣불리 추천하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개인적으로는 별점을 주자면 별 세 개 정도. 보통 수준이다.

위에서 말한 그런 내용 때문에 페미니즘적인 부분이 (내 기대보다) 덜해서 다소 아쉬워서 별 세 개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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