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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by Jaime Chung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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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三抛)' 세대 때문에 출산율도 1명 이하로 낮아진 이 시대에, 아직도 이들이 포기한 그 세 가지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우리의 친구, 친척, 또는 지인의 얼굴을 하고서 "근데 너 왜 연애 안 해?"라며, 일단 (그다음에 이어질 고난을 위한) 제1관문을 왜 통과하지 못하느냐며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한다.

연애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여러 번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그들 머릿속에서 모든 이들은 재생산을 위해 짝을 짓는 게 너무나 당연한 세상의 진리이다. 그건 개인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런 이들의 독촉에 질린 저자는 '비(非)연애주의자'들을 위한 잡지 <계간홀로 :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펴낸 1인 편집자이다.

 

이 책은 그 잡지의 계보를 이으며 '이렇게 연애를 강요하고 비연애를 마치 비정상인 것처럼 몰아가는 사회의 편견에 대해 고민'하고,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주장한다.

저자의 드립력이 상당해서 거의 매 페이지에서 웃음이 난다. 인터넷 서핑,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인 현재 20대~30대라면 저자의 유머를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제일 웃기다고 생각한 것은, 연애하는 좀비 이야기인 영화 <웜 바디스(Warm Bodies, 2013)>에 개탄하는 꼭지였다.

'괴물'은 사회에서 추방된 절대적 타자다. (...) 바로 그 순간 사랑에 빠진 괴물은 '선'이 되고, 사랑을 모르는 괴물은 정체성과 본능에 충실한 죄로, 그리고 사랑을 모른 죄로 '악'이 된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라는 <웨딩 피치>의 명대사를 알랑가 모르겠다. 자신들의 사랑을 전시하듯 키스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악마의 불쌍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던 연출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다. 피치와 케빈의 명치를 세게 때리자.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친구가 고사리와 사랑에 빠졌는데, 나는 배가 고프다. 이 고사리를 먹어야겠다. 근데 얘가 고사리를 너무 사랑해서 먹으면 안 된단다. 고사리랑 안고 천년만년 오래오래 살겠단다. 이해가 안 돼서, 비빔밥 해 먹게내놓으라고 했더니, 아니, 이놈 자식이 고사리를 감싸고 내 얼굴에 선빵을 날리네?! 엌!

 

이 부분에서 언급하는 그 <웨딩 피치>의 장면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한 그 짤 대령이오. 나무위키의 이 항목도 참고하시라.

https://namu.wiki/w/%EC%82%AC%EB%9E%91%EC%9D%98%20%EB%A9%8B%EC%A7%90%EC%9D%84%20%EB%AA%A8%EB%A5%B4%EB%8A%94%20%EB%8B%B9%EC%8B%A0%EC%9D%80%20%EB%B6%88%EC%8C%8D%ED%95%B4%EC%9A%94

 

아니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생각을 하지? '괴물'이라는 타자와 그 타자가 '사랑'이라는 인간적 감정을 통해 인간화된다는 개념을 다루는 것도 흥미로운데 그걸 '고사리'라는 소재를 이용해 비유를 해서 설명을 하니 진짜 배가 찢어질 정도로 웃겼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웃기기만 한 건 아니고, ('(여자가 너무 똑똑해서) 남자들이 안 좋아할 텐데'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은 '대학원생'답게) 다양한 서적을 인용하며 진지한 분석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애를 글로 배웠습니다>라는 꼭지에서는 1920년대 지식인들은 '외국의 연애 소설로 연애를 배우고, 연애를 상상'했다는 점을 밝힌다.

<그린 라이트는 꺼라>라는 글에서는 연극 <폭스 파인더>를 통해 '그냥 (연애 감정 없이) 잘해 준 것'을 연애 감정의 시초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우습고 비상식적인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성애자들 뿐 아니라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가시화되는 퀴어들의 연애도 다룰 정도로 꼼꼼하다.

또한 이 책은 '싱글 레벨'에 따라 1에서 3까지 나누어 글의 챕터를 구분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대략 이렇게 보면 맞을 것 같다.

레벨 1은 남녀 불문하고 '비연애주의자'(그러니까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사람들)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레벨 2는 비연애주의자 여성이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는, 하기 어려운 이유이며(다시 말해 우리나라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여성 혐오의 면면), 마지막 레벨 3에서는 '연애를 안 해도' 인생이 너무나 즐거운 덕후, 그중에서도 아이돌이나 2D 덕후들의 입장을 다뤘다.

따라서 아이돌이나 2D를 '파는', 한국 비연애주의자 여성이 이 책을 가장 많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굳이 이런 '이상적 독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냥 글 자체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게 쓰였으니 '비연애주의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보기에 좋다.

이 정도면 저자가 정말 유하게, 재미있게 비연애주의자들의 입장을 잘 말해 줬는데 그래도 '왜 연애 안 해?'라고 말한다면 이것보다 어떻게 더 잘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나라면 '남이사. 신경 끄세요' 하고 말할 것 같다만).

연애보다 더 재미있는 게 많아서 연애를 안 해도 인생이 즐겁다는 분들, 또는 그런 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사실 전자라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겠지만, 혹시나 후자의 사람들에게 '왜 연애 안 해?'라는 질문을 받을 때 좀 더 학문적이고 사회분석적이며 구조적으로 짜임새가 있는 대답을 해 주고 싶다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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