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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브리짓 슐트, <타임 푸어>

by Jaime Chung 2019.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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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브리짓 슐트, <타임 푸어>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왜 자신은 여가를 누릴 시간이 없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시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쓴 책이 바로 이 <타임 푸어>이다.

그녀는 현대에 삶을 편하게 해 주는 온갖 기기가 이렇게 많은데도(세탁기나 컴퓨터처럼) 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시간에 쫓기고 여유가 없는 것인지를 이상하게 여겼다.

그녀가 제시하는 답은 이것이다. 회사에서 장시간 노동하고 헌신하는 '이상적인 노동자'와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현대 사회의 압박이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노동자'는 대개 남성으로 여겨지는데,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이 이상을 좇다 보면 개인 건강은 물론이고 가정이라든가 취미 등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돌볼 시간이 없게 된다.

여성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임신할 시간 또는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아(높은 강도나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을 돌보기 어려워 임신이 안 되는 것도 포함) 애를 갖기도 어렵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애를 가졌다 해도 회사에서는 임신한 여성 또는 애 엄마를 '개인적 사정' 때문에 회사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 없는 존재로 보고 불이익을 준다.

책 제목은 <타임 푸어>이고 부제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가사·휴식 균형 잡기'이지만 사실은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있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이 책의 초점이라 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 겉표지에 애를 업고 시계를 매고 곧장이라도 달려나갈 것 같은 여성의 콜라주가 있긴 하지만,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냥 제목과 부제만 보고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에 관한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내가 위에서 말한 초점이 본문 내용에 더 가깝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이들(대개 여성)에게 탄력 근무제 또는 성과 위주의 근무 환경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실제로 이렇게 되면 남녀를 불문하고 효율성과 성과가 쑥 오르므로 더 많은 기업이 이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성 인력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아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면 위에서 말하는 그런 기업으로 이직하는 것도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점과 '놀이'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내라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을 제일 먼저 하라는 것이다.

 

책 제목이 <타임 푸어>인데 종이책 기준으로 516쪽이나 되어서 진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이 이걸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다.

일이나 이런저런 일로 여가를 위한 시간을 찾기 힘든 이를 위해 이 책을 썼다면 분량 조절에서 약간 실패한 것 같다.

사실 책 뒤의 100쪽 정도는 주(註/注, annotation)이기 때문에 안 읽어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해도 약 400쪽을 읽어야 한다는 건데, 책 두께가 이 정도 되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도 귀찮다(나는 다행히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으로 봤는데, 역시 두껍고 무거운 책은 전자책으로 읽는 게 정답인 듯).

따라서 이 책을 정말 읽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분들은 맨 뒤의 '부록'부터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부록은 본문에서 이야기한 내용의 포인트만 뽑아서 실용적으로 정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것만 읽으면 일단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느낌으로 요점을 습득할 수 있다.

물론 본문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해 놓은 거라 본문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디서 이 말이 나온 거지? 무슨 의미지?' 싶을 부분이 몇 곳 있긴 하다.

그런 건 천천히 본문을 읽어 나가면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이 책을 정말로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 특히 그중에서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낼 여력이 없는 여성들을 위해 썼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오해는 마시라. 그런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또 그들을 배려하기 위해 국가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 모델로 덴마크를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저자가 그런 여성들을 위해 글을 썼다면 저자가 저널리즘에서 하루이틀 일한 기자도 아니고, 분량 조절을 잘못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

그냥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들이 왜 시간이 없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를 다룬 그냥 '인문학 서적'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기는 해도 역시 500쪽가량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내가 저자라면, 또는 적어도 편집자라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바쁜 여성의 이야기는 어차피 모든 장에서(이 책은 크게 '1. 쫓기는 삶' '2. 일', '3. 사랑', '4. 놀이', '5. 삶의 균형을 잡다'의 5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여성의 이야기는 매번 나오기 때문에 아예 여성이 남성보다 더 바쁜 이유를 한 개 장에 압축해서 정리해 쓰겠다.

그러고 나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기업과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개인적으로 명상이라든지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을 내는 법을 따로 다루겠다. 그러면 적어도 50쪽은 줄어들지 않을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이 왜 바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 테니 그에 대한 인용은 하지 않겠다(저자는 시간 연구 학자들과 이런저런 사례 등을 인용해서 설명하긴 한다).

다만 책 리뷰를 이쯤 읽으면 그래도 뭔가 문제 해결이 도움이 될 만한 실마리나 해결 방안을 원하실 것 같아서, '놀이'에 대한 부분을 살짝 인용해 보여 드릴까 한다.

 

사라와 나디아는 사람에게는 놀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놀이를 해야 창조를 하고, 창의력과 즉흥성을 발휘하고, 상상하고, 혁신하고, 학습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영리해지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호기심을 간직하고, 피로를 회복하고, 행복해진다. 나디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놀이를 정당화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요. 놀이는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놀이에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어요. 그게 참 매력적이죠."

 

그 후 브라운은 6,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놀이 이력play history'을 추적했다. 시간을 내서 놀지 않는 사람들은 태도와 행동 모두에 즐거움이 없고, 경직돼 있고, 중독 성향이 강하고, 호기심이 별로 없고, 일에 중독돼 살거나 우울한 경우가 많았다. 브라운은 사람들이 놀이 본능을 되찾도록 도와주기 위해 아주 어릴 때 놀았던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어릴 때 좋아했던 일을 기억해 내면 그것을 바탕으로 놀이를 시작할 수 있다. 놀이는 성인으로서 자신이 하는 일에 열정과 창조성을 더해 준다. 리처드 파인만이 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놀이 본능을 되찾으면 배우자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친밀감과 유대감이 높아지고 유머가 깃들게 된다. 그리고 가벼운 정신적 재미를 느끼기 위해 시간을 내게 된다.

 

'놀이'가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으신 분은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등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이 두 저자는 이 책에서도 인용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여가', '여유'의 역사적 의미(고대 희랍인들이 '시간'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두 가지로 나누어 구분했던 것, 중세 귀족 여성의 여가란 그녀가 의존하는 남성, 즉 아버지나 남편의 권위와 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는 사실 등) 등 인문학적 지식도 쌓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다.

그리고, 솔직히, 저자가 주장하고 호소하는 것처럼 육아를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일, 그리고 기업과 국가에서도 배려하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라고 의식이 상당히 변하기 전까지 나는 애를 가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한 사람이고 여가, 나만의 시간을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서 애를 돌보느라 내 시간을 다 빼앗기면 도저히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힌다.

지금은 의식과 제도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장 내가 애를 낳아서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그리고 육아에 참여하는 아버지들도) 존경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끄트머리에 나온, 인상 깊은 한마디를 인용하며 리뷰를 마칠까 한다.

"시간은 권력이다. 당신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주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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