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김드리, <왠지 클래식한 사람>
뮤지컬 음악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는 작곡가 김드리의 책.
'기쁨, 즐거움, 흥겨움, 슬픔, 우울, 불안, 그리움, 고통, 분노, 공포' 같은 감정뿐 아니라 '열정, 평화, 위로, 몽환, 고독, 감사' 같은 키워드까지 클래식 음악과 그 뒷이야기를 연결해 풀어냈다.
예를 들어 책의 맨 첫 챕터 '기쁨' 편에서는 맨 첫 곡으로 <생일 축하합니다(Happy Birthday To You)>를 소개하며 원곡은 1893년 미국의 패티·밀드레드 힐 자매가 만든 <Good Morning to All>이지만 1910년대에 누군가가 이 노래에 'Happy birthday to you'라는 가사를 붙였다는 이야기를 해 준다.
또한 처음 멜로디를 만든 힐 자매와 여기에 가사를 붙인 사람, 그리고 편곡해서 이 노래를 발표한 사람 사이의 저작권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는데, 결국 몇 년 전 캘리포니아 중앙지방법원은 이 노래가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는 판결을 냈다고 한다.
이렇게 각 챕터마다 누구나 길 가다가 또는 TV 또는 CF 광고 등을 통해서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대중적인 곡을 고르고 그 노래 또는 그 작곡가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해 주는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상당하다.
책 내에 슈만처럼 여러 번 등장하는 작곡가면 할 이야기가 없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저자는 각 주제에 맞는 적절한 이야기를 찾아서 들려 준다.
나처럼 클래식을 잘 알지도 못하고(고등학교 1학년 때 공통 과정으로 배운 음악 수업에서 과제를 위해 대표적인 클래식 곡이 녹음된 테이프를 두어 번 돌려서 들어 본 게 내 인생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한 경험의 거의 전부이다)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다 알 만한 곡을 고른 것도 대단한데, 그 곡에 관련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는 솜씨는 더더욱 대단하다.
애초에 나는 음악으로 '열정, 평화, 위로, 몽환, 고독, 감사'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행위를 음악이 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어쩜 저자는 애초에 그런 키워드를 고를 생각을 했을까. 정말 감탄이 나온다. 음악은 인생을 모두 감싸안는구나.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클래식 음악은 대단해! 이 정도는 들어야 교양인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너도 들어!' 같은 '우에까라메센(上から目線,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깔보는 시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친한 언니 또는 누나가 '이 곡/작곡가에겐 이런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 진짜 굉장하지 않니?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자니 너무 아깝다. 너도 같이 파자!'라며 신나게 내게 덬토크 및 전도(혹은 영업?)를 하는 느낌이다.
클래식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전무하다 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고 입문하려는 사람은 물론이요, 그냥 교양을 쌓고 싶은 사람에게도 무척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가 에릭 사티(Eric Satie)의 <벡사시옹(Vexations)>을 (악보에 적힌 대로) 840번 반복해 연주하는 데 성공했으나, "저녁 6시에 시작된 공연이 다음 날 오후 12시 40분쯤 끝났고, 그때까지 객석에 남아 있던 사람은 극소수, 그것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런 재밌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딜 가서 찾아 듣겠는가?
솔직히 클래식에 관심 없는 나도 저자의 즐겁게 읽었고 저자의 글쓰기 실력에 반할 정도였으니,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그렇게 읽고 나서 '클래식이 의외로 재미있는 분야구나! 나도 그럼 한번 들어 볼까?' 하고 클래식을 살짝 시도해 볼 마음이 생긴다면, 그거야말로 저자가 제일 바라고 글 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참고로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도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 심미안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을 짚어 주는 책이다.
여기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다루는데 음악, 건축, 사진, 디자인이라는 예술의 다섯 가지 분야(한 가지 분야가 각각 하나의 챕터에 해당한다) 중 음악 챕터에 잠시 나오는 정도이다.
클래식만 전문으로 다루는 책을 원한다면, 그리고 좀 더 흥미로운 에피소드라고 할까, 각각의 꼭지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원한다면 김드리의 <왠지 클래식한 사람>이 그 전문이니 그쪽을 추천한다.
반면에 <심미안 수업>은 여러 분야를 조금씩이나마 살펴보고 '이런 예술은 이렇게 살펴보고 공부하면 되는구나' 하고 초급자 또는 입문자가 간단히 그 분야에 발을 들이는 방법을 알아보는 데 적절하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조금 더 자세히 다룬 책으로 옮겨가는 게 좋을 듯하다. 어쨌거나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심미안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간단히 훑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심미안 수업>도 괜찮다는 점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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