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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미야기 아야코, <교열걸> (1~3)

by Jaime Chung 2018.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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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미야기 아야코, <교열걸> (1~3)


세련된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고노 에쓰코는 패션 잡지 <라시>의 편집자가 되고 싶어서 출판사에 입사했지만 어째서인지 교열부에 배치된다.

그녀 주변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선배 요네오카, 에쓰코가 바라는 꿈의 일을 하고 있는 <C.C> 편집자 모리오, 작가 접대에만 바쁘고 교열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는 편집자 가이즈카, 새송이버섯을 닮은 교열부 부장, 일은 열심이고 성실하지만 꾸밀 줄 모르는 후지이와 등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라시> 편집부로 이동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가진 그녀는 과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교열자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교열이란 '문서나 원고 등의 내용 가운데 잘못되거나 불충분한 점을 조사하고 검토하여 정정하거나 교정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의 오탈자를 바로잡고, 문법 틀린 곳을 고치고, 문장을 읽기 쉽고 뜻이 명확하도록 가다듬는다.

소설 속 에쓰코가 그러듯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 틀린 부분이 있으면 수정하기도 한다.

처음 일을 시작한 때부터 줄곧 이 분야의 일을 해 온 나로서는 너무나 공감되는 소설이었다(나는 패션 센스가 뛰어나지는 않고 패션 잡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문학을 좋아하니 에쓰코보다는 요네오카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책깨나 읽었다고 자부해 왔으며 약간의 설명충 기질이 있어서 맞춤법이 틀린 걸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며 당장 고쳐 주고 싶어서 손이 드릉드릉한다. 물론 그래 봤자 이 현실에서는 절대 좋은 소리를 못 듣는다.

맞춤법 틀린 걸 고쳐 주면 대개 사람들은 그걸 호의라기보다는 잘난 척, 선생질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를 '문법 나치'라고 부를 뿐이다. 그럼 우리도 기분이 상하니 그냥 어느 순간부터는 고쳐 주기를 포기하고 가만히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생각한다. '그거 틀렸는데...'

하지만 교열자는 정정당당하게, 합법적으로, 남의 글에 손을 대며 '선생질'을 할 수 있으며 욕도 안 먹고 대신에 돈을 받는다! 이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 그래서 나는 교열자가 되었다.

물론 내가 이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 맞춤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일을 하는 와중에도 '국립 국어원'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전화를 걸어 '이건 이렇게 쓰는 게 맞나요?' 물어봐야 했지만.

게다가 국어 문법도 고정된 게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사전에 수록된 내용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므로 이것도 주기적으로 확인해 공부해야 한다. 아주 귀찮은 일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이 일이 좋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약간 변태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틀린 걸 고치고 있자 '아니 왜 이런 걸 틀려?' 싶은 생각과 동시에 희열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더러운 걸 치우고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기분이 좋고 산뜻하지 않은가? 그 느낌 비슷하다.

뭐? 그래도 여전히 변태 같다고? 안다.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정말 보람 있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최고 매력은 패션과 교열이라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은 두 가지를 잘 버무려 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말해 패션을 좋아한다고 하면 외모에만 신경 쓰고 다소 머리는 가벼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문학을 좋아한다고 하면 생각은 깊고 똑똑하지만 어딘가 사회성이 부족하거나 외모를 단정히 하는 일은 젬병일 거라고 여기고.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이 언제나 들어맞는 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소설은 그걸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2006)> 영화 버전보다 낫다고 보는데 그 이유가 바로 그거다.

저자는 외양을 가꾸는 일과 내면의 차이, 게이로 산다는 것, 형제 간의 이해, 건강한 자존감, 하고 싶은 일과 자기가 잘하는 일 간의 간극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며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그것도 전혀 어렵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나는 이런 이슈들을 이야기 내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어 이 소설이 단순히 교열 이야기가 아니라 출판사 내의 사람들, 그 개인들의 고유한 이야기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그것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직군의 사람들 이야기를.

 

1권은 에쓰코의 이야기이고 2권은 1권과 같은 타임라인이되 에쓰코 외의 다른 인물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따라서 같은 기간에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지냈는지, 그동안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엿볼 수 있다.

나는 모든 세부 사항이 촘촘하게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1, 2권은 그런 면에서 무척 흥미롭다.

3권은 다시 에쓰코의 이야기이다. 3권이 출간된 게 작년 2017년 10월 말이니 4권이 만약 나온다면 아마 올해 말이나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제발 3권으로 완결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도 한번 보고 싶은데 왓챠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만 시청이 가능하다고 하다. 아쉽다. 왓챠 아니면 어디서 정식으로 구해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아시는 분 제보 바랍니다ㅜㅜ).

 

교열에 대한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띄어쓰기가 틀려서 누가 봐도 이건 잘못됐다 싶은 부분이 3권을 통틀어 세네 번 정도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예를 들어 '<C. C>는십 대 독자들이...' 이런 식으로 스페이스를 한 번 빼먹은 실수들이었다. 이 점이 무척 아쉽다.

그렇지만 교열이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이야기 자체가 재밌기도 하고.

교열걸 에쓰코를 따라 교열의 세계에 빠져서 앞으로 아름답고 올바른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앞장서자! ^^

그런 의미에서 다들 참고하시라고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 대사전 링크를 첨부한다. 참고하시라! http://stdweb2.korean.go.kr/main.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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