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Senior Year(2022, 시니어 이어) - 몸은 37세, 마음은 17세!
감독: 알렉스 하드캐슬(Alex Hardcastle)
시간적 배경은 2002년. 스테파니(Stephanie, 앵거리 라이스 분)는 호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호주 소녀이다. 그녀는 '잘나가는' 고등학교 킹카 블레인(Blaine, 타일러 반하트 분)이랑 사귀고 싶어서 '인기 있는 아이들'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화장도 시작하고 치어리딩 팀에 들어가 나름대로 그 목표를 이루었다. 블레인이 스테파니에게 푹 빠져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최종 목표, 그러니까 블레인과 쌍으로 프롬 킹과 퀸이 되고, 그와 결혼해 멋진 집에서 사는 것과는 멀지만, 그래도 거기에 다가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프롬을 며칠 앞둔 날, 스테파니가 자기 남자 친구 블레인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스테파니의 적수, 티파니(Tiffany, 아나 이 푸이그 분)의 계략으로 인해 치어리딩을 하다가 바닥으로 그냥 낙하해(원래 다른 치어리더들이 받아 주었어야 했는데 티파니가 섭외한 치어리더가 이를 막았다) 코마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20년간 코마에 빠져 있던 스테파니(Stephanie, 레벨 윌슨 분)는 어느 날 깨어난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렀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게 스테파니의 꿈을 막을 순 없다!
이제는 더 이상 17살이 아니고 37살이지만 학교로 돌아가 프롬 퀸의 꿈을 이루고 완벽한 삶을 사는 데 다시 한 번 도전하리라! 스테파니는 그렇게 자신의 절친이었던 마사(Martha, 마리 홀랜드 분)가 교장으로 있고 자신을 짝사랑하던 남사친 세스(Seth, 샘 리차드슨)가 사서로 있는 하딩 고교(Harding High)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IMDB 평점이 6점도 안 되는 5.7점이길래 살짝 의심했으나 주연이 내가 호감이라 생각하는 레벨 윌슨이라 크게 따지지 않고 일단 틀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이게 왜 6점도 안 되지?'라고 고개를 갸웃할 정도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KTX 타고 가면서 봐도 너무나 성인 여성인 레벨 윌슨을 보고 17살이라 믿을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그 갭에서 나오는 웃음이란 것도 있으니까 ㅋㅋㅋ 게다가 레벨 윌슨의 연기도 괜찮다.
치어리딩 '팀 캡틴(스테파니가 이를 여러 번 강조한다)'인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라 치어리딩이 나오는 건 당연한데 그걸 빌미로 상상 장면에도 군무랑 음악을 넣었다. 중간에도 여러 번 나오고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그냥 춤판이다. 덕분에 볼거리는 확실히 있다.
레벨 윌슨은 춤을 잘 추는 편은 아니다만 일단 안무를 좀 웃기게 짜기도 했고 (안무가님이 힘내셨네...) 표정 연기로 무대를 압도한다.
스테파니가 거의 마흔이 다 되어 학교에 돌아왔을 때 사귀는 친구 중 재닛(Janet, 아반티카 분)과 야즈(Yaz, 조슈아 콜리 분)도 이 춤+음악 무대에 합류하는데 귀엽다.
재닛은 인도계 미국인인데 17살인 지금 벌써부터 2040년에 미국 대통령직에 출마하겠다는 야심이 아주 당찬 소녀고, 야즈는 역시나 KTX 타고 가면서 봐도 퀴어인 소년인데 정말 잘생겼다.
평소에도 모든 수업을 같이 듣는지 언제나 같이 다니고, 춤을 출 때 야즈가 재닛 볼에 뽀뽀를 하기도 하는데 둘이 진짜 좋은 친구구나 싶어서 보는 내가 다 흐뭇해진다.
IMDB 평점이 6점도 안 되는 평범하게 망한 영화라고 단정짓기에는 좀 의외로 시니컬하게 요즘 세태를 비판하는 구석도 있다.
예컨대, 예전에는 인기가 있고 싶으면, 그냥 주위, 그러니까 직장이나 학교 사람들과만 친하고 그들에게 호감을 얻으면 됐다.
그런데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이 되니, 얼굴과 이름조차 모르는 낯선 사람을 '팔로워'로 만들어야 하고 그들의 호감을 얻어야 한다.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의 범위가 훨씬 넓어져서 호감 사기가 훨씬 어려워진 것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예전보다 많고 (이거야 사회적으로 약자, 타인을 배려하는 의식이 높아진 결과니 나쁜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신경 써야 할 것도 많다.
마사가 교장으로 있는 현재 하딩 고교는 치어리딩이 짧은 옷을 입고 섹시한 춤을 추는 집단이 아니라(2002년 하딩 고교에선 그랬다), 남녀 불문하고 온 몸을 다 덮는 안전한 옷을 입고 율동 수준의 안무를 하며 '(관계 전) 동의'나 '환경' 등의 문제에 대해 구호를 외치는 모임이 됐다.
학교에 속한 스포츠 팀이나 치어리딩 팀 등이 따 온 트로피 등을 보관하던 장소는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한, 탐폰으로 만든 고래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면 물건을 공짜로 받고 이런저런 후원도 받기에 그걸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비정한 엄마 캐릭터도 있다. 나름대로 요즘 세태 비판을 과하지 않게 은근히 잘한 것 같다.
옥의 티를 찾자면 스테파니의 아빠 역으로 나오는 크리스 파넬은 딸이 17살 때나 37살 때나 하나도 안 달라진 모습인데요... ㅋㅋㅋ
아, 1990년대~2000년대 영화, 또는 TV 쇼의 팬이라면 반가울 얼굴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스테파니가 우상처럼 여기고 '꼭 그녀처럼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게, 같은 하딩 고교 출신 선배인 디애나 루소(Deanna Russo)라는 인물인데, 이 역할을 알리시아 실버스톤(Alicia Silverstone)이 맡았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기 위함인지 스테파니의 방에 (알리시아 실버스톤이 출연한 영화) <클루리스(Clueless, 1995)>의 포스터가 있다.
스포일러를 하진 않겠지만 디애나 루소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인생, 성공이 단순히 보이는 것만이 아님을 알려 주기 위한 '실패자'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도 마음에 든다.
전체적으로 꽤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였다. 마지막에, 크레디트 다 올라가고 난 후에 짧은 쿠키 영상 같은 게 있는데 이걸 보면 후속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좋겠다. 일단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시도는 해 볼 듯.
어쨌거나 주말에 가볍게 볼 만한 재밌는 영화를 찾는다면 <시니어 이어>도 한번 기회를 줘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