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롤러를 이용해 우체국 등기 우편을 자동으로 정리한’ 공익 근무 요원으로 인터넷 커뮤니티뿐 아니라 대중매체에서도 잘 알려진 반병현 씨의 첫 에세이.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저자가 IgA 신증이라는 일종의 신장병을 앓고 있음에도 공익이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그 정도면 충분히 면제를 받아도 되지 않나? 이에 대해 다른 이들도 많이 분노한 듯하다(책에도 나온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글 기저에 2년간 국가에 소속되어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 분노, 좌절, 슬픔이 깔려 있다. 공익 근무 요원은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의 월급을 받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얼마나 경제적으로, 또한 정신적으로 힘들겠는가. 저자가 공익 시절 쓴 글에서 대체복무를 강제노역이라고 표현한 심정도 이해가 된다. 젊은이들을 국가에서 데려다 쓰면서 하루 세끼 밥 챙겨 먹을 정도의 돈은 챙겨 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저자는 재능을 살려 그 안에서 업무 자동화를 꾀하고, 노동부와 행안부를 비롯해 한국 행정부에 나름대로 기여한 데다가 행정 혁신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청와대에도 초청되고, 또 이렇게 책까지 써서 자신의 브랜드를 세워 널리 알리게 되었으니 나름대로 ‘해피 엔딩’이라 하겠다. 공익 생활에 가만히 손놓고 있는 게 아니라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프로젝트를 계획해 브런치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며 나름대로 ‘업적’(병무청에서 휴가를 줄 만한 공익 기여 활동이자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쌓아나간다는 게, 정말 보통 사람이라면 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사실 그 힘든 시기를 그저 버텨내기만 해도 잘한 건데 그 시간을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있는 결실로 바꾼다는 게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스러운 건 카이스트에서 바이오및뇌공학으로 석사까지 하신 분이 (2020년쯤 작성된) 책 말미에는 진동학과 미생물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쓰셨다는 점……. 그리고 또 업무 자동화에 대한 자문 역으로 노동부에 방문했을 때 CNN(Convolutional Neural Network, 아주 간단히 말해 딥러닝의 한 방법) 이야기 하는 것이나 콘퍼런스에 참여하는 것,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세상엔 똑똑한 사람들, 그냥 똑똑하기만 한 게 아니라 또 공부도 엄청 한 사람들이 참 많다. 나 같은 무지렁이는 어떻게 살라고? 🥲
요약하자면 대단하신 분의 역경 극복기를 읽은 셈이지만 질투 같은 건 요만큼도 안 난다. 다들 자기 능력대로 사는 법이니까. 꼭 엄청 똑똑해야만, 공부를 많이 해야만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애초에 자신의 블로그에 연쇄적으로 악플을 다는 사람을 콕 집어 그의 악플이 올라오는 족족 바로 삭제시키는 프로그램을 ‘셀레니움’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사람에게 내가 무슨 질투를 느끼겠는가. 수준 차이도 웬만해야 질투라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껄껄… 어쨌거나 프로그래밍이나 뇌공학을 잘 몰라도 전문적인 지식을 굳이 이해할 필요 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셔도 좋을 듯.
참고로 저자의 블로그는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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