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무라타 사야카, <편의점 인간>
⚠️ 아래 서평은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실 예정인 분들은 독서의 재미를 위해 책을 먼저 읽으신 후에 이 서평을 읽으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나는 소설, 그중에서도 일본 소설은 별로 자주 읽지 않는데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일본 소설을 읽었다.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라는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 종이책 기준 204쪽밖에 안 될 정도로 짧다. 저자 본인이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경험을 살려 썼다고 한다.
주인공 게이코는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그녀가 거쳐간 점장도 한둘이 아니다. 현재가 여덟 번째. 그녀는 자신을 ‘편의점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위 ‘정상’인과는 달리 어딘가가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릴 때 죽은 새를 보며 슬퍼하기보단 구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싸우는 아이들을 말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삽을 들고 달려나가 뒷통수를 가격해 때려눕혔다. 내가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서 게이코를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우울증은 확실히 아니고,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하기엔 감정과 표정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하며, 그렇다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보기엔 남들을 조종하려는 의지가 없고…. 여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단명이 어떻게 되었든간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은 참 소박하고 보기 좋다. 점장으로 진급하겠다는 야망도 없고, 정직원 일을 구할 생각도 없이 그저 아르바이트에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는 게 존경스럽기도 하고. 다만 세상이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시라하라는 여혐 종자가 ‘조몬 시대(일본의 신석기 시대에 속하는 시기 중 하나)’ 운운하며 게이코를 이용해 먹는데 정말 안타깝다. 난 원래 어르신이나 순수한 사람들이 사기당하거나 이용당하는 거 너무 괴롭고 무력감이 느껴져서 잘 못 보는데… 어쨌거나 소설은 시라하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 정직원 면접을 보기 전 잠시 기다리던 게이코가 다른 편의점에 홀린 듯 들어가 마치 그곳 직원인 것처럼 일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진짜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해 태어나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게 천성인 ‘편의점 인간’답다. 시라하라는 짐을 떼어낸 게이코는 다시 편의점 일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나름대로 해피 엔딩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게이코가 타인과의 교류를 꺼리는 현대인을 대표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다. 게이코는 연애나 결혼 같은 소위 ‘정상인’들의 관심사에는 흥미도 없고 또 그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도 어려워하는데 편의점의 다른 아르바이트생이나 게이코의 고향 친구, 게이코의 여동생 등 다른 이들은 그야말로 ‘정상인’이다. 게이코와 비슷한 다른 인물이 최소한 한 명은 더 등장해야 이런 현상이 흔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게이코가 ‘정상’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고 느끼는 점은 나도 공감할 수 있다. 편의점은 모든 것이 규칙에 따라 행해지는데 그 규칙이란 건 회사 매뉴얼나 빅 데이터로 얻은 지식 등 비교적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 반면에 인간들의 심리와 행동은...어렵다. 게다가 연애가 됐든 정직원이 됐든간에 자기네들이 보기에 ‘정상’적인 삶의 길을 딱 정해 놓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넌 왜 이 길을 가지 않아?’ 하고 집요하게 묻고 따지는 건 너무 폭력 아닌가. 게이코는 성실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뿐인데! 게이코를 비롯해 욕심 없고 야망 없이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 좀 내버려 두었으면…
읽고 나서 무엇이 남았느냐 묻는다면 딱히 뭐가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추천할 만한 책이냐 하면 그런 건 아닌데 읽고 싶다고 하면 굳이 말릴 마음도 없는 그런 소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무척 갈릴 것 같다. 읽어 보고 싶으시다면 안전하게 도서관에서 빌리는 쪽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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