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
⚠️ 아래 영화 후기는 <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2018)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밥 퍼시케티(Bob Persichetti), 피터 램지(Peter Ramsey), 로드니 로스맨(Rodney Rothman)
마일스 모랄레스(샤메익 무어 목소리 연기)는 그래피티를 좋아하는 평범한 십 대 소년이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아빠 제퍼슨(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목소리 연기)보다 아론 삼촌(마허샬라 알리 목소리 연기)과 더 가깝게 지낸다. 어느 날, 마일스는 방사능 거미에 물려 초능력을 얻게 되는데 심지어 세상에 스파이더맨이 한 명뿐인 게 아니라 다른 우주에서 온 스파이더맨, 스파이더우먼, 심지어 스파이더피그까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힘을 합쳐 온갖 우주들을 뒤섞어 버린 악당 킹핀(리브 슈라이버 목소리 연기)에 맞서 싸워야 한다.
나는 마블 영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 유명한 ‘타노스’가 나오는 <Avengers: Endgame(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도 안 봤고, 그래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면 세상의 절반이 죽는다는 것도 그냥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이 한 스포일러를 통해 알게 됐다(이제 더 이상 ‘스포일러’로 여겨지는 것 같지도 않지만). 내가 마블 영화에 대해 아는 것은 인터넷 밈을 통해 알게 된 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다. 애초에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도 남자 친구 때문이다. 그는 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신작 <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23)이 개봉하는데 그걸 나랑 보러 가고 싶어 했고, 그 전에 예습 개념으로 이 영화를 봐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이 정도를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였다. 좋은 의미로 놀랐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애니메이션이 너무 뛰어나서 후대의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들로 하여금 한 단계 성장하게 긴장감을 주었다는 평은 나도 영화를 보기 전에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정말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색감도 색감인데 마일스가 방사능 거미에 물린 이후로 만화스러운 장치, 그러니까 말풍선이나 효과음 등을 사용하는 게 정말 신선했다. 무엇보다 ‘스파이더 유니버스’라는 소재를 잘 살렸다는 점이 정말 멋졌다. 기존에 우리가 알던 토비 맥과이어가 분한 스파이더맨뿐 아니라 이 애니메이션 속에는 다양한 스파이더-피플이 있다. 그중 마일스가 처음으로 만난 게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던 스파이더맨(크리스 파인 목소리 연기)이다. 마일스는 그를 처음 만나 그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만 해도 ‘초보’ 스파이더맨에 불과했지만 다른 스파이더-피플, 그러니까 중년의 지친 스파이더맨 피터 B. 파커(제이크 존슨 목소리 연기), 소중한 친구 피터 파커를 잃은 이후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한 스파이더우먼 그웬 스테이시(헤일리 스테인펠드 목소리 연기), 느와르 버전 스파이더맨 만화 속에 존재하는 스파이더 느와르(니콜라스 케이지 목소리 연기), 미래에서 온, 로봇을 타고 싸우는 스파이더걸 페니 파커(키미코 글렌 목소리 연기), 그리고 루니 튠스풍의 만화 버전 스파이더-피그인 스파이더햄(존 멀레이니 목소리 연기)을 만나며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후에도 타인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외로운 영웅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각각 특별한 개성을 가진 스파이더 갱을 보여 준다는, 이 ‘스파이더-버스’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기가 막혔다. 실사 버전 영화만 놓고 봐도 토비 맥과이어 스파이더맨, 앤드류 가필드 스파이더맨, 그리고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까지, 같아 보여도 서로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있는데 이 설정 차이를 유머러스하게 메타(meta)적으로 보여 주는 방법이 아닌가! 안 그래도 마블 세계관에 여러 버전의 스파이더맨/우먼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고, 이걸 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했는데 이 영화 시리즈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서 보여 주니 다 이해가 된다. 진짜 대단하다.
애니메이션과 소재, 그걸 풀어나가는 이야기도 좋지만 연출과 음악 이야기도 좀 덧붙이고 싶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연출은 마일스가 피터 B. 파커가 쏜 거미줄에 얽혀서 아무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아빠가 이야기하는 걸 듣는 장면이었다. 마일스의 기숙사 방문 하나를 두고 아빠가 마일스에게 걱정과 사랑을 표현하며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고 하는데 사실 마일는 이때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고, 방문을 열고 나가 아빠를 맞이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태이므로 아빠 입장에서는 ‘얘가 나랑 말하기는커녕 얼굴조차 보고 싶어 하지 않는구나’ 오해하기 딱 좋다. 이때 아빠의 독백 아닌 독백을 통해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알게 된 마일스는 나중에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자발적으로 하게 된다. 이런 기가 막힌 연출이라니! 게다가 음악은 또 어떤지. 포스트 말론(Post Malone)과 스웨이 리(Swae Lee)의 ‘Sunflowers’는 영화에서 두어 번 등장하는데 워낙에 곡이 좋아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이미 내가 이 노래를 알 정도였으니까.
아마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유니버스>를 보고서도 리뷰를 쓸 것 같지만 (이 리뷰가 업로드 되는 시점에 이미 나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유니버스>도 다 보고 나서 후기까지 썼다. 곧 올릴 예정!) 일단 이 영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정말 대단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연출을 공부하는 지망생들이라면 이 영화도 꼭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을 것 같다. 본인이 스파이더맨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애니메이션이나 연출,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그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서라도 보면 좋겠다. 그 정도로 신선하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다. 기존 스파이더맨/우먼들을 융합하면서 새로운 스파이더맨인 마일스 모랄레스의 정체성까지 잘 드러냈다는 점이 특히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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