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Space Cadet(스페이스 카뎃)>(2024)
하… <금발이 너무해(Legally Blonde)>(2001)가 되고 싶어 했으나 장렬히 망한 영화. 심지어 이 글을 쓰는 7월 첫째 주말 기준 IMDB 평점도 4.9점에 그쳤다(이 글을 업데이트하기 전날인 7월 16일에 봐도 4.9점… 0.1점도 오르지 않았다). 6점도 안 된다는 건 진짜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 건데… 나는 왜 이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 취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주인공 렉스 심슨(엠마 로버츠 분)은 천성이 느긋하고 명랑한 ‘플로리다 걸’로, 어릴 적에 엄마와 우주선이 발사되는 광경을 바라보며 우주 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수한 동급생 토드릭(세바스티안 야트라 분)에게 선의의 라이벌로 여겨질 만큼 똑똑하고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여성이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본인도 마음을 추스르고 아버지를 돌보아 드리느라 조지아 공대 진학을 미뤘고, 그러다 보니 정말 해놓은 게 없는 상태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 흘러 버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동창회에서 만난 토드릭에게 렉스는 자신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선뜻 털어놓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 뺨치게 우주 산업으로 성공한 토드릭에게 자기가 바텐더나 한다고 어떻게 말해! 토드릭을 만나고 돌아온 동창회 날 밤, 렉스는 다시 심기일전해서 우주비행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그리고 우주비행사를 뽑는 NASA에 지원하는 이력서도 일필휘지로 쓴다. 여기서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이력서를 퇴고하게 좀 봐 달라고 절친 네이딘(포피 리우 분)에게 보냈더니, 네이딘이 그의 이력서를 완전히 위조해 버린 것. 학위라곤 고졸이 전부인 렉스에게 온갖 휘황찬란한 가짜 학위를 주렁주렁 달아 전송해 버렸다! 게다가 NASA 측에서 이 허위 이력서를 그대로 믿고 아주 유능한 후보가 들어왔다며 렉스를 진짜로 인터뷰 및 우주비행사 훈련을 위해 부르는 심각한 상황 발생! 렉스는 과연 험난한 훈련과 시험을 통과해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을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금발이 너무해>를 목표로 했으나, 장렬하게 실패했다.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려는 의도는 좋았으나,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이 영화 자체를 너무 못 만들었다. 분명히 한 장면 안에서도 흐름이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고, 각본은 형편없으며, 연기는 잘 쳐 봐야 그저 그렇다. 무엇보다 엠마 로버츠가 맡은 렉스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민망하다. 영어로 하면 ‘cringey’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 정말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렉스는, 일단 이름부터 소위 DQN 이름(나무위키나 이 글 참고)이라 별나다는 느낌을 주는데, 하는 짓도 민망하기 짝이 없다. 모든 사람들을, 남녀노소 막론하고 ‘dude’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이 도대체 존재하긴 해…? 그럴듯한 학위는 없어도 고정관념을 넘어서 사고하는 뛰어난 창의력으로 문제 해결에 능하다는 설정인데, 그건 바다소들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수문을 비롯해 이것저것 발명을 많이 했다는 설정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듯. 그건 그렇다 치고, 사람들과의 친화력이나 사교성이 좋다, 리더십이 있다, 이런 설정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웹소설이나 웹툰 등에서 천재 캐릭터를 굴리고 싶은데 작가가 그걸 표현할 재능이 없으면 천재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멍청하게 만들곤 하는데, 이것도 그것과 비슷하다. 설마 렉스가 자기의 교관인 오리어리 박사(톰 후퍼 분)를 첫 만남부터 아주 오래 안 사람처럼 달려가서 안기고 격식 없이 구는데 이걸 친화력이라고 하진 않겠지? 미국 애들도 자기 상관, 교관, 인터뷰어 등 윗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허물 없이 굴진 않아요… 게다가 거기에 반한 오리어리 박사도 너무 이상하다. 말이 나온 김에 오리어리 박사의 캐릭터 자체가 너무 허술해서 짜증이 난다. 영국식 액센트(미국인인데 영국 국적까지 이중으로 가지고 있다는 설정)에 안경을 썼고, 위아래 없이 그저 해맑은 렉스에게 반해서 무너진다는 설정 도대체 뭐냐고요! 영국식 액센트가 이렇게 짜증 나게 들린 것도 오랜만이었다.
어쨌든,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그나마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일단 현실과 달리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후보들을 훈련시키고 시험하는 교관 두 명 중 한 명이 흑인 여성 팸 프록터(가브리엘 유니언 분)라는 점이나, 우주비행사 후보생들의 최소 40%가 여성이라는 점 등이 그걸 잘 나타낸다. 그래, 여성들의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진출을 장려하기 위해 이런 분야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아주 좋다. 현실은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을지언정, <스타 트렉> 시리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 흑인 여성인 우후라를 통신 장교로 설정함으로써 많은 흑인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처럼. 이건 참 의미 있는 일이다. 렉스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게 된 바이올렛(쿠후 베르마 분)은 약간 사회성이 떨어지지만 똑똑하고, 그래서 사회성은 좋지만 지식이 부족한 렉스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게 도와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다. 이 둘이 ‘여적여’ 프레임을 깨고(렉스가 이 비슷한 말을, 자기를 싫어하는 켈로그 박사(데시 리딕 분)에게 직접 하기도 한다) 단짝이 되는 건 다 좋은데, 정말 흐뭇하고 좋은데, 그래서 이 영화를 나도 참 사랑하고 싶은데, 사실 그게 어렵다. 왜냐? 그냥 재미가 없으니까. 위에서 말했듯이 각본이 형편없다(참고로 감독이 각본까지 썼다). <금발이 너무해> 같은 작품이 되기엔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다고요!
다시 한번 간략하게 평을 내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삐거덕거리고 반죽의 비율이 잘못된 수제비처럼 뚝뚝 끊어지는 영화다. 뭘 하려고 했는지는 알겠는데, 그걸 잘 구현해내지 못해서 망했다. 아마존 프라임이 아마존 멤버십 때문에 무료로 따라오는 분이라 하더라도 굳이 이 영화는 볼 필요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보지 마세요 정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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