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Best of Enemies(더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2019)
배경은 1971년,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더럼(Durham)이라는 동네. C.P. 엘리스(샘 록웰 분)는 KKK단의 일원으로, 심지어 이 사실을 숨기지도 않는 인종차별주의자다. 반면에 앤 앳워터(타라지 P. 헨더슨 분)는 맹렬한 흑인 인권 운동가로 소문 났다. 어느 날, KKK단은 흑인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불을 낸다. 다행히 다친 아이는 없었지만 건물이 연기에 가득 차서 수업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에 이 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수업 일수를 맞출 수 있도록 백인 아이들 전용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KKK단을 비롯한 차별주의자들은 당연히 이를 반대하고, 결국 양측의 입장을 다 듣고 조율해서 결론을 내리려는 목적으로 토론회가 열리게 된다. 토론회의 진행을 맡은 빌 리딕(바부 치세이 분)은 찬성과 반대 측의 리더 격 자리에 C.P.와 앤을 추천한다. 놀랍게도 이 둘은 토론회를 이끌어가며 우정을 키우게 되는데…
감동 실화에 기반한 영화. KKK단의 일원과 흑인 인권 운동가가 친구가 된다니! 이런 양극단에 있는 이들이 친구가 되는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트로프인데(’Odd Friendship’), 이건 또 실화 기반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사람은 언제나 다면적이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실화가 잘 보여 준다.
C.P.가 본인 입으로도 말하지만,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고, 어딘가에 속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걸 준 게 KKK단이었고, 그래서 그는 거기에 충성했다.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상에 있는 C.P.의 아들을 앤이 도와주자 (C.P.의 아들은 방을 옮겨야 했는데 C.P.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고, 이를 알게 된 앤이 자기 인맥을 이용해 옮겨 준 것이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앤의 딸이 자신을 괴물 보듯이 쭈뼛쭈볏 피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 보이나’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그가 신념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면, 아무래도 빌이 토론회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백인 학부모나 흑인 학부모나 자식을 사랑하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만, 흑인 학부모는 백인 학부모보다 해 줄 수 있는 게 더 적다고 말한다. 흑인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데, 그때 느끼는 고통과 좌절과 슬픔, 분노 등으로부터 아이를 막아 줄 수는 없으니까. 아마 이 말을 듣고 C.P.도 흑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 것 같다. 그리고 최종 투표 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백인과 흑인 아이들의 통합 수업을 지지하는 찬성 표를 던진다.
이 감동적인 영화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면, 마지막까지 훈훈하고 희망적인 엔딩이다 보니 관객들에게 너무 멜로드라마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 실화는 아주 훌륭한 두 인물의 이야기고 그 둘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멋진 일이지만, 이 영화가 그걸 아주 매끈하게 표현해서 관객들로 하여금 ‘와, 세상 참 좋아졌어. 이젠 흑인과 백인이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현실엔 여전히 인종 갈등이 많은데! 이 영화를 보고 인류애를 다시 충전하며 (이미 존재하는) 인종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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