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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I Used to Be Funny(아이 유즈드 투 비 퍼니)>(2023)

by Jaime Chung 2024.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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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I Used to Be Funny(아이 유즈드 투 비 퍼니)>(2023)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I Used to Be Funny(아이 유즈드 투 비 퍼니)>(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샘 코웰(레이첼 세노트 분)은 원래 재치 있고 인기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돌봐주던 14살짜리 소녀 브룩(올가 펫사 분)이 어느 날 가출해 실종된 이후로 현재는 집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PTSD를 앓고 있다. 다행히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자 든든한 친구인 페이지(사브리나 잘리스 분)와 필립(카메론 히어론 분)이 그녀의 곁을 지켜 준다. 제목처럼 ‘한때 웃기던’ 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이렇게 된 걸까? 영화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일과 브룩과의 우정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여 준다.

샘이 하는 농담이 재미있긴 하지만 이 영화를 빵빵 터지는 영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코미디보다는 드라마에 더 방점이 찍힌 영화라 그렇다. 게다가 ‘웃겨야’ 할 주인공은 PTSD를 앓고 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샘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자주 오르지만, 생업으로는 브룩의 보모 일을 하고 있었다. 브룩의 어머니는 병으로 입원해 있고, 브룩의 아버지 카메론(제이슨 존스 분)과 브룩의 고모 질(대니 카인드 분)은 둘 다 바빠서 브룩을 살뜰하게 돌봐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브룩을 가까이서 봐줄 사람으로 브룩이 고용된 것이다. 샘은 브룩의 친구이고 언니 같았다. 브룩도 샘을 참 잘 따랐는데, 어느 날 둘의 사이를 갈라놓은 일이 벌어진다. 샘이 남친 노아(에니스 에스머 분)와의 기념일이라 더 늦게까지 브룩네 집에 머물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던 어느 날 밤, 카메론이 유튜브에서 샘의 코미디 영상을 봤다며 말을 꺼낸다. 카메론이 경찰인데, 샘이 어느 코미디 영상에서 경찰을 좋아한다고(그 농담의 펀치라인은 ‘소방수가 더 좋다’는 거였는데도) 말하는 걸 들었으며, 거칠게 섹스하는 걸 좋아하지 않느냐고. 샘은 그건 농담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미 술에 잔뜩 취한 카메론은 그녀의 거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날 새벽, 카메론에게 성폭행을 당한 샘은 머리에 상처를 입은 채로 급하게 브룩네 방으로 올라가 집에 불이 나서 이산화탄소가 가득하다, 이대로면 위험하다고 거짓말을 해 브룩을 집에서 데리고 나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911 대원에 의해 브룩과 샘은 근처 병원으로 이송된다. 병원에서 브룩은 성폭행 사실을 경찰과 병원 직원들에게만 알린다. 브룩이 알기에는 너무 잔인한 진실이라 생각했기에, 샘은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샘?’이라고 여러 번 묻는 브룩을 애써 무시한다. 결과적으로 성폭행 혐의로 고발당한 카메론은 판사에 의해 5년 형을 받는다. 하지만 샘은 기쁘지 않다. 동생처럼 자신을 따르던 브룩이 이제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브룩의 고모인 질조차도 샘에게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룩은 가출하고, 실종 청소년이 된 브룩을 찾는다는 뉴스가 TV를 뒤덮는다.

그 때문에 샘은 PTSD가 와서 집 밖을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친 노아와 헤어진 것은 당연지사. 자신을 돌보는 일조차 하기 힘든데 남과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페이지와 필립은 샘이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샘은 별로 낫는 것 같지 않다. 결국 샘은 실종된 브룩을 찾으러 가기로 마음먹는다. 판사의 결정이 나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샘을 동정했지만 브룩만은 그녀를 미워했고, 그건 동정에 비하면 차라리 샘이 견딜 만한 것이었다. 샘은 브룩이 언급했던 ‘네이선’(스티븐 알렉산더 분)이라는 남자애를 실마리로 삼아 브룩을 찾으러 떠나고, 결국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마을에서 브룩을 찾아낸다. 브룩은 네이선이라는 남자애와 같이 지내고 있었는데 샘과 같이 떠나려 하지 않는다. 결국 호신용 스프레이로 네이선을 떼어놓고 브룩을 거의 멱살 잡다시피 해서 안전한 모텔로 데려온 샘. 샘은 브룩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지만 브룩은 샘을 원망한다. 왜 그때 자기를 버렸냐고. 아빠가 샘에게 그런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는 버리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결국 브룩이 샘을 미워했던 건 아빠를 재판정에 세워 교도소에 보내서가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 자기에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고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샘에게 버림 받았다고 느꼈기에 그토록 샘을 미워했던 것. 샘과 브룩은 같이 엉엉 울면서 서로를 용서한다. 결국 브룩은 샘과 같이 집에 돌아가는 데 동의하고,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샘은 이제 자신을 옥죄어 왔던 PTSD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무대에 오른다. 놀랍게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강간에 대한 농담을 던진다. 자신의 상처와 끔찍한 기억에 대해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치유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재미라고 할까,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어쩌다가 샘이 PTSD를 겪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되는 사건을 조용히 (관객 입장에서) 따라가는 데 있다. 일이 일어난 순서대로 사건을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적당히 과거 회상을 이용해 사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기에 관객은 영화 중후반에 가서야 샘이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적당히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되 거기까지 가는 길에도 유머(샘의 농담과 스탠드업 코미디 장면 등)를 뿌려 놓았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원칙 중 하나인 ‘이야기의 중간에서 시작하라(라틴어로 하자면 ‘in medias res’, 일의 중간이라는 뜻이다)’를 잘 따르는 영화라 하겠다. 이야기의 중간에서 시작해 처음도 보여 주고, 끝까지 다다르는 과정을 지루하거나 짜증나지 않게(진짜 중요한 걸 계속 미루고 보여 주지 않으면 관객 입장으로선 답답하니까) 속도를 잘 조절했다.

또한 샘과 브룩이 결국 다시 화해하고 자매애에 가까운 우정을 회복한다는 결말도 무척 마음에 든다. 샘을 아프게 한 건 카메론의 성폭행뿐 아니라, 자신을 거짓말쟁이라 부르며 태도가 돌변한 브룩이기도 할 테니까, 브룩을 찾아내고 다시 화해함으로써 상처가 낫는다는 설정은 분명히 이치에 닿는다. 삶에서 유머를 찾아내는 게 천직인 샘이 이번 일로 주저앉아 있는 게 아니라 브룩을 찾아나서는 강인함도 좋고.

레이첼 세노트는 실제로 스탠드업 코미디도 한 코미디언이라(이 유튜브 영상을 보시라) 이 영화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언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샘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해서, 샘이 할 법한 농담들을 실제로 스탠드업 코미디 바에서 해 봤단다(개중에 한 관객이 레이첼 세노트를 알아봤다고). 참고로 <타임 아웃>지는 그녀의 코미디 스타일을 “(페미니스트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플레이보이 클럽에 잡입해 보고하는 것 같다”(출처)라고 평했다. 감이 오시는지?

 

요즘 쓸데없이 영어로 된 영화 제목을 번역도 하지 않고, 새로운 제목을 지어 주지도 않고 그냥 들어오는 일이 많다. 나도 영어 제목을 음차해서 그대로 쓰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는 국내에 개봉할 예정이 없어서 그냥 이 제목으로 남을 듯하다. 꽤 좋은 영화여서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아 고민하다가 리뷰도 스포일러를 해 버렸다. 하지만 기회가 되신다면 꼭 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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