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Lisa Frankenstein(리사 프랑켄슈타인)>(2024)
리사(캐스린 뉴턴 분)는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고 그 충격에 말수가 적어진 소녀이다. 리사의 친아버지는 재닛(칼라 구기노 분)이라는 여자와 재혼했는데, 재닛은 리사를 이미 미친 여자애라고 생각하고 꺼려 한다. 다행히 재닛의 친딸이자 리사 입장에서는 의붓자매인 태피(리자 소베라노 분)는 인기 있는 치어리더로, 리사를 자기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주고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애쓴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태피는 리사를 파티에 데리고 가는데, 리사는 거기에서 짝사랑 상대인 마이클 트렌트(헨리 아이켄베리 분)를 만난다. 근데 마이클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은 한 여자애가 리사에게 건네준, 약이 든 음료 때문에 리사는 헤롱헤롱하다가 더그(브라이스 로메로 분)라는 남자애에게 성추행을 당하게 된다. 당하자마자 바로 그 방을 나와버렸지만 제정신을 못 차리고 평소 즐겨 가던 공동묘지에 가 버린 리사. 거기에서 리사는 한 독신남의 묘에서 ‘나도 너와 같이 (죽어서 땅 밑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소원을 빈다. 그러고 나서 어찌어찌 집에 온 다음 날, 리사네 집에 웬 시체가 걸어들어 오는데…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고딕 호러 소설이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프랑켄슈타인’으로 잘못 알고 있는 그 이상한 괴물, 인간이 창조한 괴물 캐릭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사실은 그 괴물을 만들어낸 박사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고, 괴물은 이름이 없으며 ‘괴물’ 또는 ‘창조물’ 등으로 불린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도 이 원작에서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여자애가 남자 괴물을… 만든다기보다는 불러낸다. 엄밀히 말하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강령술을 해서 대충 살아 있는 것처럼 만든 것이지만 비슷하다고 치자. 리사가 ‘창조물’(이 영화 내에서도 남주인 이 캐릭터는 이름이 없다. 편의상 창조물이라 부르자)에게 없는 부분을 바느질로 꿰매어 주고 태피의 태닝 베드를 이용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긴 하지만. 어쨌거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이나 최소한 영감의 기원으로 하는 작품들은 주인공이 시체나 다른 재료를 이용해 창조물을 만들어낸다는 핵심 설정을 가져오는데, 이 영화는 그러지 않았다. 리사는 영화 초반에 우울해하고 살짝 정신줄을 놓은 애로 보일지언정, 과학자나 학자와는 거리가 멀다. 원작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나 다른 아류들,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류의 남성 캐릭터들은 ‘나 스스로 신이 되어 인간을 창조해 보이겠다’라는 의도를 보이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Weird Science(신비한 체험)>(1985)이라는 영화에서는 요즘 말로 하자면 ‘인셀’인 남고생 둘이 컴퓨터를 이용해 자기 입맛에 맞는, 쭉쭉빵빵한 몸매의 미녀를 만들어내는데 말이다. 실제로 이게 가능한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고, 이러이러해서 새 창조물을 만들 정도로 그들이 오만했고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고 싶어 했다 하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인데, 실제로 인간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다시 말해, 임신 및 출산이 가능한) 여성 캐릭터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쓴 디아블로 코디 감독 본인도 여성이라 그걸 모를 리는 없을 거고, 뭔가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여성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낼 능력이 있으니까 굳이 그렇게 위험한 일(신의 권위에 맞선다고 보일 수도 있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닐까. 게다가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생명을 창조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난자 구하기가 정자 구하기보다 백만 배는 어려우니까.
이 점에 관해 뭐 언급된 인터뷰가 있나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과연 있었다(이 기사). 생각해 볼 만한 점이 많은 좋은 인터뷰다. 디아블로 코디 감독이 어릴 적에 (위에서 언급한) <신비한 체험>을 봤던 경험을 들면서, ‘여자가 자기 입맛대로 남자를 만드는 이야기는 어떨까?’라고 생각했다는 얘기였다. <신비한 체험> 외에도 남자들이 완벽한 여자들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많은데, 그 ‘완벽한 여자’란 것은 사실 외모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래서 디아블로 코디 감독은 리사로 하여금 빅토리아 시대의 남성 ‘창조물’(’창조물’의 비석에는 ‘창조물’이 1837년에 미혼으로 죽었다고 쓰여 있다. 빅토리아 시대는 다들 알다시피 1837년부터 1901년까지다)을 현대로 데려와(참고로 극 중 배경은 1989년이다) 자기 입맛대로 바꾸게 한다. 생각해 보니 정말로 ‘창조물’은 리사에 의해 되살아난 순간부터 리사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리사를 해치지 않는다(근데 이건 새끼 오리가 처음 본 존재를 자기 어미로 인식하는 것과 비슷한 본능 아닐까?). 오히려 살인까지 하면서 리사를 돕는다. 결과적으로 리사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게다가 <Pretty Woman(프리티 우먼)>(1990) 같은 영화들에서 보통 여자들이 하는, 상대의 취향이나 상황에 맞게 옷을 갈아입는 ‘패션 쇼’ 장면은 ‘창조물’이 한다. ‘창조물’이 옷을 갈아입으면 리사가 판단을 내린다(당연하지만 리사가 그 옷도 괜찮다고 허락을 내리는 건 가장 마지막 옷이다. 그때까지는 리사와 관객의 눈요기를 위해 ‘창조물’은 여러 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창조물’에게 말하는 능력은 없어서 리사와 ‘대화’라는 것은 전적으로 리사가 주렁주렁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고 ‘창조물’의 침묵을 저 좋을대로 해석하는 것뿐이다. 이 모든 점들이 ‘창조물’은 리사를 위한 ‘피그말리온’임을 보여 준다. 덧붙이자면, 디아블로 코디 감독은 원래 ‘창조물’이 되살아나 리사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부츠를 벗는 장면이 각본에 있었다고 밝혔다. 그 정도로 (‘요즘 남자들’과는 달리) 매너가 좋고 예의범절을 배운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미였을 것이다.
영화는 공포물이긴 한데 엄청 잔인하거나 징그러운 정도는 아니다. 원래는 19금을 의도하고 만들었으나 편집과 재촬영을 거쳐 15금(PG-13) ‘순한 맛’으로 수위를 낮췄기 때문이다. 덕분에 쫄보인 나도 별 문제 없이 볼 수 있었다. 캐스린 뉴턴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한 리사 캐릭터를 잘 연기했고, 콜 스프라우스는 처음 되살아났을 땐 시체처럼 뻣뻣한 상태이지만 점차 생명력을 얻고 관절 등 몸 움직이 점차 부드러워지는 디테일까지 잘 살리는 연기를 보여 준다. 고스족 미학(aesthetics)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영화 내 의상이나 소품 등을 즐기실 듯하다. <프랑켄슈타인>류의 IP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도 한번 볼만하다. 영화 끝에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있으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까지는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끝까지 보시라(힌트이자 작은 스포일러: 원작을 쓴 메리 셸리의 남편인 퍼시 셸리가 메리 사후에 그녀를 그리워하며 쓴 시가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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