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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by Jaime Chung 2018.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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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제스 베이커,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

 

제스 베이커의 <나는 뚱뚱하게 살기로 했다>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body acceptance) 운동에 관한 책이다.

'뚱뚱하다(fat)'는 말은 그저 몸에 지방이 많다는 의미일 뿐, 이것에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판단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뚱뚱하든 말랐든 우리의 몸은 보살피고 사랑해 주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패션 산업, 다이어트 산업, 심지어 건강 산업까지 도무지 불가능한 미의 기준을 우리에게 들이미는 바람에 우리는 자신의 몸매에 만족하기 어렵게 되었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다이어트 걱정을 해야 하고, 마르면 마른 대로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니 말이다.

 

대개 마른 것, 날씬한 것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뚱뚱해도 건강할 수 있고 날씬해도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마른 비만'을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다이어트는 오히려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찌게 만든다(이에 대해서는 지나 콜라타의 <사상 최고의 다이어트 - 왜 모든 다이어트는 실패하는가?>를 참고하시라. 정말 좋은 책이다).

다이어트와 자기 혐오의 연을 이제는 끊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몸의 체지방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몸을 그대로 사랑해 주고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예쁘다"가 아니라)을 아는 것이다.

또한 다른 이들의 몸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엄청 무례한 일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자기 몸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왔는지(세미나 강연을 통해, '애버크롬비 & 피치(Abercrombie & Fitch)' 같은 브랜드 광고에 대한 저항을 통해, 자기 몸이 예쁘게 나오는 각도가 아닌,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셀피 찍기 운동 등등을 통해) 이야기한다.

챕터와 챕터 사이에는 "도전! 뚱뚱한 사람도 할 수 있다" 코너가 있는데, '자전거 타기', '비키니 입기' 등 일상적이지만 비만인들이 타인의 눈치 때문에 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시도해 보자는 내용이다.

신체 긍정 운동에 남성과 백인이 아닌 타 인종들, 그리고 장애인들끼리 모두 포용하려는 시도가 책에서 엿보이는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 훌륭하다.

 

내 표현이 부족해 이 이상으로 이 책에 대해 더 멋지거나 간략하게, 또는 재미있게 소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더 이상의 설명은 이 책에서 만난, 내 마음에 와 닿는 문장들로 갈음하고자 한다.

 

내가 이 위계를 어떻게 부쉈는지 말해 주겠다. '아름다움'과 '예쁨'은 내게 서로 다른 의미다. 아름다움이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석양은 아름답다. 사람 사이의 만남은 아름답다. 다정함은 아름답다. 몸은 아름답다. 모든 몸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도처에 존재하고, 누구에게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아름다울 수 있다.

반면 여성의 외모를 묘사할 때 쓰이는 "예쁨"이란 기업들이 만들어 낸 신체적 이상으로, 당신이 예뻐지기 전까지는 불완전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드는 개념이다. 예쁨은 그들이 당신에게 세뇌시킨 것이다. 예쁨은 여성들이 서로 싸우게끔 하는 원인이다. 예쁨은 돈에 굶주린 개새끼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예쁨은 썩 꺼져라. 원래 우리의 것인 아름다움을 되찾자. (Chapter 1 몸은 '나'를 담는 숭고한 집)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 막 격렬한 운동을 마치고 뿌듯해하며 식탁에 앉던 참이었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 디저트를 먹어도 될 만큼 날씬해질 날을 꿈꾸고 있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얼마나 더 기다리면 케이크를 먹어도 괜찮을까?

1년? 어림없다. 5년? 부족하다. 10년? 아니다.

아마 삶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 그게 정답이었다. 다이어트에는 끝이 없다. 다이어트를 그만두면 살이 찔 거고 그건 마음속에서 내가 졌다는 뜻이었다. 곧 내 인생이 무가치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날씬해지는 게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리ㅏ고 진심으로 믿었다. 일단 날씬해지기만 하면 세상이 바뀔 거라고, 모든 게 딱딱 들어맞을 거라고, 말 그대로 완벽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걸 '마술적 사고'라 부른다. 다이어트 문화는 의심의 지연을 엔진 삼아 달려간다. (...)

한때 다이어트를 해야만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삶을 나는 지금 113kg의 몸으로 누리고 있다. 핵심은,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한 건 다이어트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건 오로지 나 자신이었다. (Guest Essay: 113kg으로 누리는 삶에 대하여)

 

잠깐, 오해하진 말라. 깨끗한 식단과 근력운동과 주스 자체엔 잘못이 없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이를 숭배하며 이상적이고 가치 있는 몸매를 갖고자 하는 것 ― 그리고 실패하면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몸매는 걱정하지 말고, 건강에만 신경 써!" 이런 말을 하면서 힘을 되찾고 있다고 생각하면 멋지게 속은 거다. 표현만 달라졌다 뿐이지, 우리의 신체는 전과 똑같이 억압당하고 있다. (Chapter 3 도대체 언제부터 네 몸을 미워한 거야?)

 

'뚱뚱함'이란 현재 우리 문화에서 두려워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다. 여성 인권, 사회적 압박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 죽음에 대한 공포까지. 뚱뚱함을 혐오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몸 사랑하기 운동은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남들이 뭐라 하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표출하는 분노는 사실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다. 그들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사회적 규칙에 단단히 속박된 탓에 행복과 자유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유도 모르고 화를 낸다. …… 사람들은 "날씬한 사람들이 이기는" 규칙의 게임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고, 규칙의 예외를 목격하면 사기를 당한 것처럼 불쾌해한다. (Chapter 4 행복을 새치기한 자, 악플의 무게를 견뎌라)

 

나뭇가지처럼 마른 여성부터 XXL 사이즈의 여성까지 총 30명 이상이 [사진 프로젝트에] 자원했다. 나는 그들을 내 침대에 불러 (일반적 의미로) "예뻐 보이지 않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무릎을 껴안으라고, 발가락을 만지라고, 배를 끌어안고 몸을 숙이라고 부탁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모두 뱃살이 접혔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183cm에 극도로 말느 전문 모델 케이티조차 뱃살이 접혔다. 포토샵에 열광하는 우리 문화에서는 자주 잊히지만 몸이 잘 움직이려면 피부가 늘어나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때 본 이미지들이 내 생각을 정상으로 돌려놓았고, 옷과 보정으로 변형되지 않은 몸이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품고 있던 잘못된 생각들을 지워 주었다. (Chapter 7 미디어 편식은 케이크보다 위험하다)

 

뚱뚱한 여자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 가운데 제일 잘못된 것은 뚱뚱한 여자는 결코 사랑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이다.

친구들, 이건 글러먹은 믿음이다. 최고로 글러먹었다. 뚱뚱한 여자도 모든 종류의 사랑에 빠지니까! 공동체의 사랑, 찰나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고양이와의 사랑, 가족과의 사랑, 일에 대한 사랑, 강아지와의 사랑, 애인과의 사랑, 커피 데이트 사랑, 평생을 갈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사랑.

쯧쯧.

사랑을 찾지 못한다니, 웬 개소리인지 모르겠다. (...)

뚱뚱한 여자도 사랑을 한다.

그 대단한 사랑을 뚱뚱한 여자도 한다는 말이다. 불꽃 튀는 사랑, 너의 모든 1인치가 완벽한 사랑, 키스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곳까지도 키스할 수 있는 사랑, 평생 뭐든 해 줄 수 있는 사랑, 갈망하고 애정이 넘치고 평생 헌신하는 사랑. 뚱뚱한 여자도 이런 사랑을 한다. 어디에서나. (Chapter 12 그 대단한 사랑을, 뚱뚱한 여자도 한다)

 

이 외에도 많이 있지만 책의 1/3을 여기에 다 옮겨 적을 순 없으니 이쯤 하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내가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에서 번역을 잘했다고 감탄한 박다솜 씨가 이 책을 (그 이전에) 번역했다. 이 책도 썩 잘 옮겼다.

(2018/08/1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코리 스탬퍼,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뚱뚱한지 날씬한지를 불문하고 모두 이 책을 한 번쯤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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