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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질 르포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by Jaime Chung 2018.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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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질 르포어, <원더우먼 허스토리>

 

 

대표적 여성 슈퍼 히어로 '원더우먼(Wonder Woman)'의 기원을 밝힌 논픽션이다.

저자 질 르포어(Jill Lepore)는 원더우먼의 창조자 윌리엄 몰튼 마스턴(William Moulton Marston)의 삶과 관련해서 그가 이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해 냈는지를 설명한다.

책은 마스턴의 탄생부터 그의 이력과 여성 편력을 따라가는데, 원더우먼은 상당 부분 마스턴 주변의 여인들에게 영감을 받아 만들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건, <Professor Marston and the Wonder Women(원더우먼 스토리, 2017)>을 보고 난 후 원더우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어서였다.

(영화 리뷰는 다음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2018/09/07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Professor Marston and the Wonder Women(원더우먼 스토리, 2017) - 원더 우먼의 탄생 뒤에 숨겨진 세 연인, 그리고 빗나간 진실의 올가미)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마스턴이란 작자는 영화에서 그려진 것보다 더 수상한데?'라는 거였다.

그의 이력을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다.

윌리엄(빌)은 마스턴 가의, 늦게 얻은 귀한 아들로 태어나 18살까지는 자살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하버드 대에서 철학 수업을 들으며 그 꿈을 버렸다.

하버드 대 심리학과 학과장에 임명돼 심리학을 가르쳤고 그 와중에 올리브 번(Olive Byrne)이라는 학생과 사랑에 빠졌다. 이미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세이디 엘리자베스 할러웨이(Sadie Elizabeth Holloway)와 결혼한 후였다.

그는 할러웨이에게 선택권을 줬다. 올리브까지 함께 셋이 같이 살거나, 아니면 그가 할러웨이를 떠나거나.

결국 그들은 같이 살게 되었다. 신여성 할러웨이는 그와 거래를 했다. 할러웨이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해서 돈을 벌었고, 올리브는 집에서 애를 돌보았다.

또한 그는 과격한 심리학 이론과 자신의 '거짓말 탐지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그는 여러 번 곤경에 빠졌다.

평생 그는 학과장으로 시작해 교수로 직위가 낮아졌고, 여러 대학 강사직을 전전하기도 하고, 종국에는 강사직도 얻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는 사기죄로 구속된 적도 있다. 머리카락 색깔과 성격의 관계를 진단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법조계에도 발을 들여보았고, 할리우드에도 도전해서 각본을 쓰고 연구하기도 했다.

자신을 '국제적으로 유명한 심리학자'로 홍보했으나 실제로 그렇게 인정받은 적은 없다.

게다가 그는 돈 버는 데엔 크게 재능이 없었다(그래서 그의 아내 할러웨이가 부지런히 일을 해야 했고, 올리브 번도 애를 키우면서 잡지에 글을 써서 돈을 벌었다).

마스턴은 할러웨이나 올리브가 쓴 글을 자기 이름으로 내기도 했다. 할러웨이나 올리브는 이를 자연스럽게 여겼던 듯하고, 자신과 마스턴의 관계를 감춘 채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을 추천하는 비평을 쓰기도 했다.

 

그의 삶과 원더우먼의 창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나 마가렛 생어(Margaret Sanger, 올리브 번의 이모이기도 하다) 같은 20세기 페미니스트들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여기에다 다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는 평생 페미니스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 자신도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고 믿는 새로운 유형의 여성상에 대한 심리적 프로파간다로서 원더우먼을 창조했다."고 1945년 3월에 썼다.

 

여성의 힘만큼이나 여성의 결박도 원더우먼의 큰 주제였다.

질 르포어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박에 대한 그의 집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 한 장(章, chapter)을 할애하는데 솔직히 나는 이걸 다 읽고서도 왜 그렇게 결박을 좋아하는지는 이해가 안 된다.

그는 "여성의 매력에 숨은 비밀은, 여성이 복종을, 즉 결박당하는 걸 즐긴다는 겁니다."라고 말했다(공정하게 말하자면, 마스턴의 아들 번 마스턴(Byrne Marston)은 결박의 중요성을 말한 건 비유적인 차원이었을 뿐이라고 확신한다. 집에서는 결박 비슷한 것도 볼 수 없었다고).

그는 미국 아동 연구 협회의 조제트 프랭크(Josette Frank, 영화에도 잠깐 나온다)나 도로시 루비섹(Dorothy Roubicek, DC의 첫 여성 편집자) 같은 여자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굳이 답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가학성에 대한 비난에는 이렇게 답했다. "만화에서 아름다운 여주인공이나 플래시 고든 같은 남주인공을 묶거나 쇠사슬로 옭아매는 것은 사디즘이 아닙니다. 캐릭터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심지어 수치심조차 느끼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는 만화 속 쇠사슬과 밧줄 사용을 줄이라는 충고를 거부했다. 그가 보기에 무해한 성적 환상은 훌륭한 것이었다.

 

그가 한 많은 일과 말이 미심쩍은 것이긴 하지만, 그가 아주 정이 안 가는 사람, 부정적인 면만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열렬히 사랑했고, 두 여인(할러웨이와 올리브 번)을 자신이 죽는 날까지 사랑했다.

또한 당시 '정상'의 기준이 편협하다 생각해 '비정상'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 및 취향(동성애, 의상 도착증, 사도마조히즘, 페티시즘 등)을 옹호했다.

그리고 원더우먼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해 페미니즘을 널리 퍼뜨리고 많은 여성과 소녀에게 희망을 주었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괜찮은 일을 웬만큼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스턴 사망 이후 할러웨이가 그의 뒤를 이어서 원더우먼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편집자에게 거절당하고, 원더우먼 캐릭터는 다른 작가 손에 넘어간다.

이 이후의 원더우먼 이야기는 이 책에서 다뤄지지 않으므로, 사실 이 책은 원더우먼의 창조자 마스턴의 일대기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내가 딱히 그 이후의 원더우먼에 관심이 있다거나, 1940년대 이후 원더우먼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더 알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건 아니지만.

혹시 원더우먼 그 자체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마스턴과 관련한, 원더우먼 탄생에 대한 책이니 나머지 부분은 다른 책에서 찾아 읽어 보셔야 할 것 같다.

윌리엄 몰튼 마스턴, 비록 그는 자신이 열정을 다해 개발한 거짓말 탐지기로 기억되지는 못할지라도, 원더우먼의 창조자로, 페미니스트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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