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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길리언 플린, <나를 찾아줘>

by Jaime Chung 2018.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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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길리언 플린, <나를 찾아줘>

 

 

닉 던(Nick Dunne)과 에이미 엘리엇(Amy Elliott)은 결혼한 지 5년 된 부부이다.

그들은 원래 뉴욕에서 만나 결혼했으나 닉의 어머니가 병에 걸리고 난 후 미주리 주로 이사 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닉은 일자리도 잃게 된다.

에이미는 여태껏 부모님이 자신을 모델로 한 어린이용 도서 <어메이징 에이미>로 번 돈을 저금한 그녀 명의의 신탁 기금에 의존해 살아 왔지만, 어느 날 부모님은 자신들도 생활이 어려우니 돈을 빌릴 수 있겠느냐 묻는다.

그래서 돈을 빌려 드리고 나니 생활은 더욱 어려워진다. 닉은 에이미의 남은 돈으로 작은 바를 하나 사서 쌍둥이 여동생 마고(Margo Dunne)와 같이 운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날이 갈수록 부부 간의 사랑이 식은 듯하다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에이미가 실종되는데, 남겨진 모든 정황은 범인이 남편 닉임을 암시한다.

과연 닉은 정말로 아내를 해친 것일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범인은 누구이고 닉은 어떻게 이 누명에서 벗어날 것인가?

 

데이빗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나를 찾아줘(Gone Girl)> 원작 소설이다.

2014년경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히트해서 제목과 대략의 스토리는 알고 있었는데 4년이 지난 후에야 실제로 보게 됐다.

나는 일단 책부터 먼저 읽고 그다음에 영화를 봤다. 내 평은 (이럴 때의 내 평가가 거의 늘 그렇듯) 책이 영화보다 훨씬 좋다.

물론, 영화도 잘 만들어졌고 이야기 진행의 속도로만 보면 책보다 빨라서 아주 스릴 있다.

그렇지만 책은 닉의 시점과 에이미의 시점을 번갈아 보여 주기 때문에, 영화에 비해 독자들이 에이미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영화는 책보다 좀 더 닉의 편으로 기울어져서, 관객이 닉에 더 공감하고 그를 동정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면 '이 부부는 참 서로 환장의 커플이네' 싶을 정도로 누가 더 잘못했다고 따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상황이 괴로울지라도 그런 거짓이 피부처럼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서 벗어날 수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토미 오하라나 힐러리 핸디를 만나 에이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어쩌다가 에이미가 그렇게 사이코패스 같아졌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나온다.

이것 때문에 영화보다 사건 진행 속도는 느려지게 되지만 에이미가 어떤 인물인지, 에이미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를 보여 주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서 나는 오히려 영화에서 이걸 쳐낸 게 아쉽다.

에이미는 어릴 적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을 덫에 걸리게 만들어 복수하는데, 이것이 나날이 발전해 결국 '실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작가 길리언 플린 본인이 영화 각본을 썼던데, 책에 나오는 데시 콜링스의 어머니를 영화에선 아예 삭제한 것이나, '막장 부부' 전문 변호사 태너 볼트의 부인이 아니라 태너 볼트가 직접 닉에게 미디어에서 그럴듯한, '회개하는 남편' 연기를 코칭해 주는 것으로 설정하는 정도는 나쁘지 않다. 이 정도 각색이야 극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좀 더 닉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이는 것 같다. '어쩌다가 미친 여자에게 걸렸다'는 느낌?

하지만 닉도 어린 여대생이랑 바람을 피우지 않았는가. 마고에게조차 그 사실을 숨겼고. 아니, 내 생각에는 에이미가 이런 짓을 저지른 건 애초에 닉이 에이미에 대한 사랑이 식었던 게 가장 큰 '원인' 아닐까 한다.

에이미는 닉이 원하는 여자, '쿨한 여자'인 척했고, 닉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노력하기를 그만뒀던 것이다.

에이미는 남편들을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아내들을 비웃으며 자신은 절대 닉을 '춤추는 원숭이'로 만들지 않겠다고 닉에게 말했다. 그러면 닉도 적당히 에이미, 그러니까 아내에게 맞춰 줘야 했는데(왜냐하면 에이미는 그런 말을 함으로써 자기는 절대로 닉에게 불평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니까, 닉이 눈치를 잘 봐서 불평할 일이 없게 행동해야 했다는 거다), 닉은 그걸 안 한 거다.

말이 너무 꼬였나? 다시 한 번 설명해 보겠다.

예를 들어, 결혼 기념일에 에이미가 여자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다른 여자들은 다 자기 남편이 퇴근 후 자기를 데리러 오게 한다.

그런데 닉은 자기 회사 동료들이 해고당했고, 자기도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니 그 동료들을 위로해야 한다며 그들과 술을 마시러 가서 에이미를 데리러 오지 않는다.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와서 에이미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면 자기도 힘들다며 짜증을 낼 뿐이다.

상황이 이해가 되시는지? 애초에 에이미는 '쿨한 여자', '바가지 안 긁는 아내'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이러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어'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권리를 아예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닉은 에이미가 '쿨한 여자'라는 생각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차릴' 생각은 꿈에도 안 한 거고. 한 쪽은 말을 안 하고 다른 한 쪽은 배려를 안 한 셈. 누가 더 잘못했다고 따지기 어려운 문제다.

 

내가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닉과 에이미가 어떤 문제를 겪는지는 알 것 같다.

나는 많은 부부/연인 관계의 문제가 솔직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애인은 독심술사가 아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야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이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입을 닫고서 남이 먼저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고, 남이 몰라 주면 꽁해 있으며 예민하게 구는 것, 나는 이게 관계를 시들게 하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까 봐, 내가 상대방에 부담을 줄까 봐, 내가 너무 드세다고 생각할까 봐 등등, 우리가 진심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들은 많다.

특히 여자들은 이런 걱정을 많이 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줄인다.

난 특히 에이미가 일기장에 쓴, '쿨한 여자' 얘기가 와 닿았다.

"그날 밤, 브루클린의 파티에서 나는 당시 유행하던 여자, 닉이 원하는 여자를 연기하고 있었다. '쿨한 여자'. 남자들은 언제나 이것을 최고의 찬사처럼 말한다. (...) 무엇보다 쿨한 여자는 섹시해야 하니까. 섹시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 쿨한 여자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도 사랑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남자다 뭐든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 마음대로 해, 날 무시해도 괜찮아, 나는 쿨한 여자니까.

남자들은 정말로 이런 여자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은 속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수없니 많은 여자들이 기꺼이 그런 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쿨한 여자'에 분노했다. 나는 남자들 ― 친구들, 동료들, 낯선 사람들 ― 이 그 끔찍하고 가식적인 여자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을 앉혀 놓고 차분하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건 여자가 아니다, 당신이 만나고 있는 건 그런 여자등이 실제로 존재하며, 자기한테 키스해 줄 거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찌질한 남자들이 각본을 쓴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본 여자다. (...)"


이걸 영화 비평가 네이선 라빈(Nathan Rabin)이 '매닉 픽시 드림 걸(Manic Pixie Dream Girl)'이라고 이름 붙인 캐릭터 유형과 비교해 보라.

이는 각본가들이 생각에만 몰두하는 젊은 남자 캐릭터에게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으라고 가르치기 위해 끼워 넣는, 오직 그 남자 주인공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여자 등장인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주이 드샤넬(Zooey Deschanel)이 자주 맡는 캐릭터, 특히 영화 <Yes Man(예스맨, 2008)>에서 연기한 앨리슨(Allison) 같은 캐릭터처럼.

아니면 <Harold and Maude(해롤드와 모드, 1971)>의 모드라거나. 죽음에 천착하는 소년을 위해 자신이 원할 때 죽음을 선택하는 할머니 말이다.

여자들은 자주 이런 캐릭터 유형에 자신을 욱여넣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이런 유형의 인물을 너무나 자주 보고, 그것이 실존하는 유형의 인간이라 믿으며, 또 그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화 또는 TV 드라마 각본가들에 의해 디자인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유니콘(unicorn)'이나 '용'이라는 상상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마치 그것이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지 않는가. 같은 현상이다.

나는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말을 해야 내가 뭘 원하는지 상대방이 알 수 있고, 그래야 맞춰 줄 수 있다. 좋은 인간 관계는 서로 솔직한 관계다.

 

약간 연애 심리학적인 얘기가 됐는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행복하게 유지되는 인간 관계의 비결은 진심을 솔직하게 전하는 방법뿐이라는 점이다.

에이미와 닉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면 이런 무서운 스릴러 극은 없었겠지. 최악의 경우라도 그냥 원만하게 합의 이혼 하는 수준에 그쳤을 것이다.

에이미가 한 짓이 100% 이해가 된다거나 합당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영화가 에이미의 입장을 조금 더 보여 줬으면 닉과 에이미 둘 다 이 사건에 책임이 있고, 둘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더 잘 드러났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고서 작가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영화는 그런 면에서 조금 전달이 잘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영화를 보고 닉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면, 또는 (약간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여자에게 한이 맺히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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