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질 볼트 테일러, <긍정의 뇌> / 스즈키 다이스케,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
질 볼트 테일러는 신경 해부학을 전공한 뇌과학자로, 이 책은 그녀가 뇌졸중 발병 후 8년간 겪은 경험을 담고 있다.
그녀의 일은 과학자들의 원활한 연구를 위해 정신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뇌 조직을 확보하는 것이었고, 그녀는 뇌 기증을 홍보하는 노래를 부르는 '노래하는 과학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잠에서 깨어 왼쪽 눈 뒤쪽에서 뭔가가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별것 아니겠지 생각하며 운동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
샤워를 하려고 물을 틀었다가 주위의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정보를 주던 '뇌의 재잘거림(brain chatter)'이 멈추었음을 깨닫는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어찌어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직장 동료의 번호를 기억해 구조를 요청하고,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가 뇌졸중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이후 그녀는 8년간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재활 치료를 하며 좌뇌의 능력을 되찾는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그녀가 좌뇌의 능력을 잃었던 동안 우뇌와 접속하며 깊은 평화와 기쁨을 느꼈다고 설명하는 부분을 다른 책에서 인용한 걸 읽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히 분류해서 좌뇌는 이성, 우뇌는 감성을 담당하는데, 좌뇌를 쓰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우뇌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좌뇌와 우뇌의 차이, 우뇌와 연결된 감각을 이렇게 설명한다.
뇌의 양쪽은 그저 신경 차원에서 서로 다르게 지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받아들이는 정보 유형에 두는 가치도 확연히 달라서 완전히 다른 성격을 드러냈다. 나는 뇌졸중 경험을 통해 우뇌 의식의 핵심에는 마음의 깊은 평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는 평화와 사랑, 기쁨, 공감을 표현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
오른쪽 뇌는 현재 순간의 풍요로움에 모든 걸 맞춘다. 삶에 대한 고마움, 살아가며 만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득하다. 매사에 만족하고, 정이 많고, 넉넉히 끌어안고, 한결같이 낙관적이다. 우뇌의 성격은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판단이 없으므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라본다.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한다. 기온이 어제보다 쌀쌀하다. 괜찮다. 오늘 비가 온다는데, 그래도 상관없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키가 크거나 돈이 많다는 것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오른쪽 뇌는 모든 사람을 인류라는 가족의 평등한 일원이라고 여긴다. 영토라든가 인종, 종교 같은 인위적 경계에 상관하지 않는다.
오른쪽 뇌에는 현재 순간 외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매순간이 감각들도 채워진다. 출생이나 죽음은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기쁨의 경험 역시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우리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를 지각하고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경험 또한 현재 순간에 일어난다. 우뇌에서는 '지금 이 순간The Moment of Now'만이 끝없이 계속 이어진다.
상당히 '뉴에이지(New Age)'스럽게 들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꾸준히 좌뇌의 기능을 회복해 나아갔는데(그녀는 심지어 양말을 신발보다 먼저 신어야 한다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우뇌가 우리에게 어떤 벅찬 평화와 기쁨을 선사하는지 알게 된 그녀는 이제 좌뇌의 일정 부위는 회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가 회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왼쪽 뇌의 부위가 있다. 비열하게 굴고 끊임없이 걱정하고 나 자신이나 남들에게 막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 좌뇌의 성격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내 몸 안에 불러일으키는 생리적 느낌이 싫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혈압이 치솟고 이마가 부어올라 두통이 일어나는 현상 말이다. 아울러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재생하는 오래된 감정 회로도 되살리고 싶지 않았다. 과거의 고통에 사로잡혀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도 짧았다.
회복 과정 중에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고 비꼬기 좋아하고 질투심 많은 내 성격을 담당하는 부위가 상처 받은 왼쪽 뇌의 자아 중추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부위는 나를 지독한 패배자로 만들고, 원한을 품고,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복수를 꾸미게 한다. 이런 성격을 되살리면 새롭게 찾은 우뇌의 순수함을 위협할 게 분명했다. 나는 이런 낡은 회로들을 그냥 내버려 둔 채 좌뇌의 자아 중추를 회복하려고 의식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생각을 멈출 의식적인 힘이 자신에게 있으며, 몸 상태나 심정에 무관하게 언제든 오른쪽 의식으로 넘어가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우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좌뇌가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 이것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면 이를 당장 멈추고 오른쪽 뇌의 깊은 곳에 있는 영원한 평화에 접속하는 습관을 들였다. 우리도 그녀에게서 이런 점을 배우면 좋을 것 같다.
그녀는 "뇌졸중 덕분에 의식적으로 과거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스즈키 다이스케의 <숨 좀 쉬며 살아볼까 합니다>를 읽었는데, 이 두 저자와 그들의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스즈키 다이스케는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로 정말 숨가쁘게, 스케줄을 꽉꽉 채워 바쁘게 살아왔다. 어느 날 그에게 뇌경색(정확히는 아테롬 혈전성 뇌경색)이 발병한다.
이 책에서 그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뇌의 기능을 회복하며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뇌경색을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에게 풀어서 설명한다.
스즈키는 자신에게 '감정실금'이 나타났다고 쓰는데, 이것은 '요실금'이 소변을 조절하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소변을 지리게 되는 것과 비슷하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감정을 격렬하게 분출하는 현상이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아내나 장모님, 동호회 회원 등)들이 너무 고마워서 몇 시간이고 펑펑 울고, 아무것도 아닌 일이 너무 우스워서 계속 웃고, 사소한 것에 화가 폭발했다고 한다.
이 중에서 감사한 마음을 격하게 느낀 순간을 묘사한 부분은 꽤 감동적이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나는 평생 흘린 양만큼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항상 곁에서 도와주는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입원 생활을 하는 동안 몇 번이나 병문안을 와 준 담당 편집자들과 오토바이 경주를 함께한 동료들, 이웃과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조카들에게 나는 이토록 큰 사랑을 받아 마땅할 만큼 무엇인가를 준 적이 있었던가? 그런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미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설사 무엇을 준 적이 있다고 해도 나를 만족시키는 행위였을 뿐, 상대방이 원한다는 이유로 순수하게 주었던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 주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나는 너무 큰 감정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저자들의 삶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질 볼트 테일러는 뇌과학자로서, 스즈키 다이스케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뇌 질환이나 뇌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고 이런 질병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돕기 위해 노력했던 그 사람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어 그들의 심정과 경험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걸 책으로 쓴다.
또한 지혜로운 주위 사람(테일러는 어머니, 스즈키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능력을 회복해 나간다.
내게는 둘 다 똑같이 놀라울 뿐이다.
스즈키 다이스키 쪽이 책에서 좀 더 개인적인 면을 더 많이 드러내는데, 자신의 아내와 만난 이야기 등을 하며 아내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3장이 나는 특히 재미있었다.
또한 자신이 뇌경색에 걸린 건 '너무 열심히 무리하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었음을 깨닫는 이야기도 3장에 나온다.
이 부분은 내가 인생을 너무 급하게 살며 나 자신을 돌보지 않는 건 아닐까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므로 1, 2장은 차치하고서라도, 서점 바닥에 앉아서라도 한번 읽어 보면 좋겠다.
뇌의 무한한 신비함을 느끼고 싶다면, 그리고 현재의 평화와 기쁨을 다시금 깨닫고 싶다면 두 저자의 책 모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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