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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다시 벨, <부탁 하나만 들어줘>

by Jaime Chung 2018.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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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다시 벨, <부탁 하나만 들어줘>

 

 

스테파니는 엄마 블로그를 운영하는 젊은 '맘'이다. 그녀의 아들 마일스는 같은 학교 니키와 친하다.

어느 날 그녀는 방과 후 마일스를 데리러 갔다가 니키의 어머니인 에밀리를 만난다.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어서 마일스가 차까지 뛰어가는 1분의 짧은 시간이라도 비를 맞으면 어떡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에밀리가 튼튼하고 깜찍하게 생긴 우산을 건네준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두 어머니들은 친구가 된다. 에밀리는 니키와 마일스가 노는 동안 스테파니와 여러 가지 '비밀'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친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는 자기가 오늘 일이 있으니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며, 자기 대신 니키를 학교에서 데려와 줄 수 있느냐 묻는다.

스테파니는 기꺼이 그렇게 한다. 그런데 당장 그날 저녁부터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에밀리가 실종되었다 생각한 스테파니는 에밀리의 남편 숀에게도 연락하지만 그는 냉랭하고 이 일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다.

일단 경찰에게 신고를 하고 난 후에도 스테파니는 고민하면서도 점차 숀에게 끌리는 걸 멈출 수 없고, 친구의 남편에게 감정을 품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데...

 

얼마 전에 리뷰한 폴 페이그(Paul Feig) 감독의 영화 <A Simple Favor(심플 페이버, 2018)>의 원작 소설이다.

(영화 리뷰는 여기: 2018/09/17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A Simple Favor(어 심플 페이버, 2018) - 패셔너블한 미스터리, 그녀는 누구인가?)

영화와 비교하자면, 나는 거의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원작의 손을 들어 주겠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난무할 예정임을 알려드리니 스포일러를 피하시려면 바로 아래에 있는 포스터부터 맨 아래에 있는 원작 소설 겉표지가 나올 때까지 스크롤을 내리시면 된다.

 

<A Simple Favor(심플 페이버, 2018)> 포스터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에밀리(영화에서는 블레이크 라이블리 분)가 이런 거대 사기극을 벌인 이유를 조금 다르게 제시한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에밀리가 그냥 보험금을 받아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계획, 그리고 뭔가 짜릿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에밀리로 하여금 자신의 '사고'를 꾸민 것처럼 나온다.

그렇지만 소설에서는 에밀리가 이 두 이유 외에도 자신의 아들 니키를 너무나 사랑해서, '이렇게 죽도록 일만 하다가는 돈도 많이 못 버는데 애가 자라는 것도 못 보고 늙어 죽겠다' 싶은 생각에 이 일을 저지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에밀리가 아들을 어찌나 끔찍하게 사랑하는지가 소설 전반에 언급되는데, 영화에서는 입도 건 에밀리가 아들을 되게 싫어하고 인생의 짐짝처럼 여기는 것처럼 그려져서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놀랐다.

이렇게까지 니키를 사랑해서 니키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그런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에밀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와 소설의 두 번째 차이점은 에밀리의 과거이다. 영화에서 에밀리는 한밤중에 쌍둥이 동생과 함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애초에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 자신과 DNA가 같다는 점을 이용해 그녀와 같이 수영하는 척하면서 그녀가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머리를 꾹 눌러 죽인다.

소설에서는, 쌍둥이 동생이 마약과 술에 중독되었다는 설정은 같지만, 방화를 저지른 화려한 전적은 없다. 에밀리가 그녀를 직접 죽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녀가 자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말하고, 그녀가 약을 하고 취한 정신에 수영하러 가야겠다고 할 때 딱히 말리지 않는다.

에밀리가 잠깐 자고 일어나니 그 애는 이미 익사한 상태였다. 소설 속 에밀리는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

 

세 번째 차이점은 상당히 크다. 영화 버전에서는 에밀리가 자신이 지금까지 저지른 짓을 실수로 다 불어 버리고, 숀과 에밀리를 죽이려고 한 장면이 스테파니(영화에서는 안나 켄드릭 분)의 '비밀 카메라'로 생중계되고, 에밀리는 결국 경찰에 붙잡혀 죗값을 치른다(에필로그에 에밀리가 교도소 생활에 잘 적응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이다. 보험사 직원 프래거가 진실을 캐고 다니자 에밀리는 스테파니를 끌어들여 그를 살해한다.

정확히는 그에게 피하 주사를 놓아 숨통을 끊은 뒤, 스테파니의 도움을 받아 그가 탄 차를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스테파니가 공범이 되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불지 못할 테니까.

절벽에서 떨어져 불에 탄 차에서 에밀리의 결혼반지(에밀리가 시어머니에게서 훔친 것)가 나오자 경찰이 이를 수상히 여기고 에밀리에게 찾아오는데, 에밀리는 오히려 스테파니가 자기 전남편과 결혼하기로 했는데 전남편이 그 반지를 스테파니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실수를 오히려 스테파니에게 덤터기를 씌울 기회로 전환시킨 것이다.

경찰이 에밀리에게 스테파니의 연락처를 받아 가고, 에밀리는 이제 니키를 데리고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결말은 나름대로 재미있었고 스펙터클했으나 더욱 현실적인 것은 후자, 소설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스테파니처럼 남을 잘 믿고 누구하고든 친구가 되려고 전전긍긍하며, 자식을 과보호하는 경향이 있는 '맘'은 남을 이용해 먹고, 정보를 철저히 단속하고, 이런 일에서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의 먹잇감이 되면 되었지, 절대 친구가 될 수는 없으며 단죄를 할 수도 없다.

물론, 위에서 말한 그런 일들을 '할 수 없다'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도 경찰이 에밀리 같은 소시오패스 같은 범죄자를 다 잡아서 감옥에 처넣으면 좋겠다. 하지만 '해야 한다'는 말이 곧 '(그런 일이) 늘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큰 세 가지 차이점으로 인해 영화와 소설 사이에 사소한 차이들도 야기된다.

예를 들어서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과거를 캐는 방법. 영화에서는 스테파니가 청소를 도와주는 도우미인 척 변장을 하고 에밀리의 옛날 집에 들어갔지만, 소설에서는 스테파니가 그냥 에밀리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찾아가도 되겠느냐 묻고 허락을 받고 들어간다.

영화에서는 에밀리가 첫 등장할 때 세련된 검은 장우산을 쓰고 나타나지만, 소설에서는 에밀리가 스테파니에게 건네준 우산은 투명 바탕에 노란 오리가 그려진, 아주 귀여운 우산이다. 와, 갭 차이 쩔어.

또한 영화에서는 스테파니가 직접 에밀리의 직장을 찾아가 에밀리의 상사 데니스를 대면하고 거의 그와 싸울 뻔할 때까지 가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다.

다만 소설에서는 에밀리가 직장에서 맡은 일이 '기밀 처리'(예를 들어 데니스가 실은 중독 문제로 재활원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휴양지에서 화려하게 놀았다고 믿게 만드는 일)였다는 점이 잘 드러나서, '아, 원래 이렇게 정보를 숨기고 비밀을 만들어 내는 일을 잘했기에 이 '사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화에서도 그 점을 알려 줬다면 에밀리가 왜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는지, 어떻게 에밀리가 스테파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피해자로 점 찍어 놓고 자기 아들을 돌봐줄 보모 정도로 생각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다소 아쉽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스테파니가 자기가 배다른 남동생과 잤다는 비밀을 다소 초기에 밝혀 버리지만, 소설에서는 첫 부분이 스테파니만의 시점으로 쭉 진행되기에 스테파니가 가진 비밀의 긴장감이 조금 더 잘 유지되는 편이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없으니 마음 놓고 읽으시라!)

영화를 보고 나서 '왜 에밀리가 이렇게 행동했는지 잘 모르겠다' 또는 '스토리텔링이 조금 아쉽다' 하는 분들은 원작 소설을 읽어 보시라.

분명 둘은 다른 부분이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읽으면 '아!' 하고 조금 더 이해가 될 것이다.

참고로 파트 1은 스테파니의 시점, 파트 2는 에밀리의 시점, 파트 3는 숀의 시점 위주로 진행된다. 각각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듣고 사건을 재구성해 보시라.

아, 번역은 그냥저냥 나쁘지 않지만, 묘하게도 등장인물들이 전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하는 '반존대'를 쓴다.

예를 들어 '아뇨, 말하기 싫어요. 그냥 생각하면 슬퍼. 모두가 불쌍해요. 특히 니키가." 이런 식이다.

부부(에밀리-숀) 사이도 그렇고 친구(에밀리-스테파니) 사이도 그렇고, 심지어 스테파니랑 숀도 다 이런 식으로 말한다.

이건 번역가의 말투인 거 같은데, 이 정도는 편집자나 교정 및 교열자가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적당히 바꿔 줘야 하지 않았나 싶다.

한두 명이면 몰라도 전부 다 같은 말투로 말한다는 건, 그건 그냥 글 쓰는 사람이 게으르다는 뜻이니까.

어쨌거나 그래도 영화를 보셨다면 원작 소설도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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