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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Long Story Short(롱 스토리 쇼트)>(2021)

by Jaime Chung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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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Long Story Short(롱 스토리 쇼트)>(2021)

 

 

⚠️ 아래 영화 후기는 (202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테디(라프 스팰 분)는 우연한 기회에 리앤(자라 뉴먼 분)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연애를 시작했으나 정작 결혼은 쭉 미뤄 왔다. 테디는 어떤 일이든 한번에 마음을 다잡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차일피일 계속 미루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테디와 리앤이 돌아가신 테디의 아버님의 묘를 방문해 테디가 리앤에게 청혼했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그곳에서 어떤 아주머니(노니 헤이즐허스트 분)가 나타나 테디에게 말을 건다. 테디에게 청혼을 했으면 결혼식은 언제 할 거냐 묻더니, 테디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2주 후는 어떠냐고 말한다. 테디는 말도 안 된다고, 그렇게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하니까 아주머니는 리앤에게 그냥 냅다 ‘결혼식 축하한다’라고 질러 버리고, 테디는 이 말을 수습하기 위해 진짜로 2주 후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물론 리앤은 이에 뛸 듯이 기뻐한다). 정체 모를 아주머니는 2주 후 결혼식 선물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둘의 결혼식 때 테디의 절친 샘(로니 쳉 분)은 ‘다른 남자들이면 리앤을 만나자마자 결혼했을 것이지만 테디는 이제서야 결혼식을 올렸다’라며 농담을 곁들인 축하 인사를 건넨다. 어쨌거나 둘은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렸고, 신혼집으로 돌아가서 신혼 첫날 밤을 맞이하려는데 (참고로 여태까지 신혼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갈 것인지 아직 못 정함) 신혼집에 쌓인 선물들 틈에서 그 낯선 아주머니가 보낸 것으로 짐작되는 깡통을 발견한다. ‘10년간 열어보지 말 것’이라고 쓰인 카드와 같이. 별 생각 없이 그 깡통을 내려놓고 신혼 첫날 밤을 보내고 눈을 떴는데, 웬걸.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벌써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 되어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일까?

 

한마디로 시간, 즉 인생은 유한하니 살아 있을 때 중요한 일들(예컨대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자신의 꿈을 추구하기)을 미루지 말고 하자는 교훈을 주는 영화다. 주인공인 테디로 말할 것 같으면 우유부단하기 둘째가라면 서럽고, 뭐든 나중으로 미루는 사람이다. 테디의 대사를 가만히 들어 보면 ‘나중에(later)’나 ‘내년에(next year)’ 같은 말을 여러 번 하고,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어떻게든 미루려고 한다. 그래서 테디의 그런 점을 알아본 신묘한 아주머니가 테디로 하여금 앞으로의 10년을 미리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인데, 테디가 자고 일어나거나 웬만큼 사건이 진행됐다 싶으면 12개월 후로 시간이 점프해 테디는 총 10번의 결혼 기념일을 경험해 보게 된다.

그동안 테디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가관이다. 일단 리앤은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테디는 아직도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다니고 있다(사진을 배워서 사진 작가가 되는 게 꿈인데도 불구하고). 리앤은 자기 꿈대로 소설을 써서 출판까지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와중에 테디와 리앤은 별거를 했고, 테디는 전 여친 베카(데나 카플란 분)와 바람을 피웠다. 리앤은 패트릭(조쉬 라슨 분)이라는 다른 남자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테디의 절친 샘은 피부암을 확진받았다. 테디가 경험하는 10번의 결혼 기념일 중에서 그가 미리 선물을 제대로 준비해 두는 일은 없다. 맨 마지막에 테디가 큰 깨달음을 얻는데, 그게 유일하게 딱 한 번 테디가 10주년 결혼 기념일의 상징물이 무엇인지 맞힌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하지 않으면서 이 영화의 평을 해 보자면, 손튼 와일더(Thorntorn Wilder)의 희곡 <우리 읍내(Our Town)>를 연상시킨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특히 3막에서 주인공 에밀리가 하는 대사, “살면서 자기 삶을 제대로 깨닫는 인간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Do any human beings ever realize life while they live it? — every, every minute?)”, 딱 이게 이 영화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의미가 있으며 그래서 더 살아 있을 때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야 하는 건데, 에밀리 말대로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솔직히 나는 이 영화가 주려고 하는 교훈, 하려고 하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사람은 영원히 살지 않으며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아니까. 하지만 그걸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느끼는 건 다르니까 이 영화를 비롯한 많은 예술 작품들이 살아 있을 때 진짜 살아 있는 것처럼 살라고 말하는 것일 테다. 이 교훈이 삶의 진실이라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고.

그렇지만 이 영화는 뭐랄까, 너무 매끈하다고 할까, 갈등이 단순하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다. 이런 영화를 묘사할 때 영어에선 보통 ‘feel-good movie’라는 표현을 쓰는데, ‘기분 좋게 해 주는 영화’라는 뜻이다. 어떻게? 삶의 모습을 가능한 한 단순화해서, 예쁘고 단정하게 정리해서 ‘이러이러하게 해결이 되었어요!’ 하고 보여 주면 결국 관객들은 ‘아, 그래, 역시 삶은 유한하고 소중한 거야. 이제는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중요한 일들을 우선시하며 살 거야.’라고 잠시 고무되며 기분이 좋을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삶의 갈등이란 건 (물론 이야기의 효율적 전달을 위해서겠지만) 너무 단순화돼 있고, 그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한 가지는 좀 아쉽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추구하라는 메시지는 좋게 들리지만, 그 꿈이란 게 꼭 사진 작가가 되는 것이나 글을 써서 출판하는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어야 하나? 예술적이고 낭만적인 것만 꿈이 아닌데.

 

전반적으로 재미도 있고 교훈도 좋지만 약간 아쉬운 영화, 그게 바로 이 영화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자고, 틀어진 아내와의 관계를 되돌리려는 것이 목표이기에 이 영화에서 보여 주는 갈등이 단순하고 명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여자였다? 완전히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장르의 이야기가 됐을 것이다(테디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 준 아주머니도 자기도 10년을 미리 겪어 보는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때 자신이 결혼한 남자랑 행복하지 못하고 자신은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을 수도!). ‘그때 그 남자랑 결혼했어야 했어’ 같은 이야기로는 21세기의 여성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테니까. 어쨌거나 영화를 보고 잠시는 고무되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영감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전적으로 관객 본인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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