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Joy Ride(조이 라이드)>(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Joy Ride(조이 라이드)>(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변호사인 오드리(애슐리 박 분)와 외설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가난한 예술가 롤로(셰리 콜라 분)는 어릴 적부터 같이 놀며 자란 동네 친구다. 지금은 오드리가 훨씬 잘나가고 롤로는 오드리네 집의 지하실에 얹혀 사는 신세이지만, 어릴 적에는 롤로가 인종 차별을 하는 아이들을 물리치며 오드리를 보호해 주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캘리포니아에서 온 중국계 부부에게서 자란 롤로와 달리 오드리는 백인 부부에게 입양돼 거의 백인처럼 자라긴 했어도, 요 둘이 동네에 딱 두 명 있는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세월이 흘러 지금 오드리는 중국의 사업가인 차오(로니 쳉 분)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으로 출장을 떠난다. 본인은 중국어를 못하니까 통역해 줄 롤로를 데리고. 아, 그리고 롤로의 사촌인데 사회성이 부족하고 어딘가 무서운 데드아이(사브리나 우 분)를 달고서. 중국에 도착한 오드리는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절친인 캣(스테파니 수 분)을 만나러 간다. 중극 사극 드라마에서 청순한 미녀를 연기하는 캣은 사실 화려한 대학 시절을 보낸 전적이 있다. 지금은 같이 드라마를 찍고 있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애인 클래런스(데스몬드 치암 분) 때문에 성욕을 꾹꾹 눌러담고 있지만. 어쨌거나 이 넷은 오드리가 차오와의 거래를 성사시켜서 오드리가 승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하는데, 어째 일이 자꾸 꼬인다!?
아시아계 네 여자들의 요절복통 섹시 코미디, 딱 이렇게 요약해서 소개할 수 있는 영화다.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워 여성의 성(性)을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하면서 그 와중에 여성들의 우정이라든가 관계를 다루는 영화는 좀처럼 찾기 쉽지 않다. 가장 최근의 예라고 하면 스칼렛 요한슨이 주연한 <Rough Night(레이디스 나잇)>(2017)나 오브리 플라자 주연의 <The To Do List(더 투 두 리스트)>(2013)일 것이다. 여성이 주연을 하면서 여성 시점에서 성을 실험하는 영화는, 그 반대의 경우보다 찾기가 훨씬 어렵다. 남성은 소년 시절부터 자신의 성을 가지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허용되거나 최소한 묵인되지만, 여성은 순결을 강요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네 여성, 그것도 아시아계 여성들이 주연하는 섹스 코미디는 더더욱 반갑다. 게다가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다. 여성 캐스트를 주연으로 세운 영화는 아무래도 ‘의미’는 좋지만 의미보다 ‘재미’가 있지 않으면 오히려 더 욕을 먹기 십상이다(그 일례로, 모든 주연이 여성인 리메이크작 <Ghostbusters(고스트버스터즈)>(2016)가 있다). 이 영화는 의미도 있으면서 적당히 재미도 갖췄다. 일단 오드리 역의 애슐리 박, 예술가 롤로 역의 셰리 콜라와 성욕이 넘쳐서 주체를 못하는 캣 역의 스테파니 수, 그리고 약간 음침한 괴짜 데드아이 역의 사브리나 우까지, 모두 연기가 좋다. 스테파니 수는 <Everything Everwhere All at Once(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에서부터 느낀대로 연기가 약간 과장스럽다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연기를 못한다고 욕할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여성의 성을 다루는 손길 자체가 유쾌하면서도 부드럽게, 잘 강약 조절을 하기 때문에 여성 관객들이 남성 위주의 섹스 코미디를 볼 때만큼의 불쾌함은 없다.
어쨌거나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골라 보라고 한다면 단연코 데드아이다. 괴짜라서 온라인으로 만난 아미(Army; BTS의 팬들을 부르는 호칭) 말고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으며, 그나마 그 인터넷 지인들도 친구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슬퍼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드리랑 더 친해지고 싶어 하는데 그런 설정이 이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그리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생각해 보니 외적으로도 보이시하게 생겨서 내가 더 호감을 가지고 좋게 해석한 건지도 모르겠다(위에서 언급한 여성 캐스트의 <고스트버스터즈>에서 내가 제일 좋아한 것도 케이트 맥키넌이 분한 괴짜 캐릭터였다. 이게 취향인 걸지도…). 참고로 데드아이가 왜 데드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지 오드리가 물어봐서 데드아이가 표정으로 답해 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걸 촬영할 때 배우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여성을 위한 이 섹스 코미디에서 살짝 ‘엣?’ 싶은 게 있다면, 아무래도 애슐리 박을 제외한 주연 세 명이 전부 중국계다 보니까 ‘차이나 머니’가 들어갔나 살짝 의심되는 장면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오드리는 백인 부부에게 입양되어 자랐고, 그래서 중국어를 못하지만, 오드리가 세 친구들과 중국에 와서 여기저기 여행(이라는 이름의 생고생)을 하면서 아름다운 경관이랄지,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 ‘난 중국을 사랑해!(I love China!)’라고 외친다. 아, 예… 그러신가요… 이 장면은 사실 영화 내 설정을 생각해 보면 웃기고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일단 이 대사를 하는 배우 자체도 한국계인데, 자기가 중국 태생인 줄 알았던 오드리가 사실 알고 보니 한국 태생이었다는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입을 빌려 중국을 찬양하기에는 좀 민망했던 모양이지… 데드아이가 케이팝(그중에서도 특히 BTS)을 좋아한다는 설정인데 나중에는 아예 케이팝 걸그룹풍으로 리믹스된 카디 비(Cardi B)의 “WAP”에 맞춰 춤도 춘다. 이것도 살짝 케이팝을 자기네 걸로 우기려는 동북공정의 일환인가 의심했는데, 다시 한 번, 애슐리 박이라는 한국계 배우를 알차게 잘 써먹은 걸로 (그래야 ‘코리안(Korean)’의 ‘케이(K)’팝이 되니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영화는 웃기기도 하지만 사실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도 코멘터리를 하기도 한다. 롤로와 애슐리가 싸울 때, 둘이 자란 동네에 아시아인이 단 둘뿐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각각 중국인과 한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좋든 싫든 같이 어울려야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도 참 맞는 말이다. 일단 비(非)아시아인이나 아시아인이 보기에 외모만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고, 아시아인들이 미국의 비주류인 것도 사실이니까 서로 뭉쳐야 그나마 좀 덤빌 만한 규모가 된다. 말하자면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것인데, 그러기엔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를 싫어하죠…
아시아인들이 주연을 한 영화라 그런지, 나는 뒤로 갈수록 ‘웃기기-감동 줘서 울리기’라는 한국 영화 패턴을 경험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앞에서 웃기더니 뒤에서 오드리의 어머니 찾기라는 소재로 이렇게 울리기 있어요? 진짜 웃다가 후반에 눈물 쏙 뺐네 (참고로 대니얼 대 킴이 오드리의 친모 남편 역으로 등장한다). 게다가 마지막에 다시 네 여인들이 우정을 회복하는 것도 훈훈했고. 여성이 주체가 되는, 더럽거나 불쾌하지 않은 섹스 코미디를 즐기고 싶은 여성이라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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