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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ree Summers(쓰리 써머스)>(2017)

by Jaime Chung 2023.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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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ree Summers(쓰리 써머스)>(2017)

 

 

⚠️ 아래 영화 후기는 <Three Summers(쓰리 써머스)>(2017)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키비(레베카 브리즈 분)는 아버지와 (이제는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고 그분의 친구들로 구성된 아일랜드 포크 음악 밴드 와리킨(WArrikin)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 대단한 인기를 끄는 밴드는 아니지만, 키비는 어머니의 유산이자 아버지와의 연결고리와도 같은 이 밴드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키비는 호주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열리는 여름 음악 축제에 참여하고, 거기에서 재능은 넘치지만 오만하고 재수 없는 테레민(안테나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장을 손으로 간섭시켜 소리를 내는 전자 악기) 연주자 롤랜드(로버트 시한 분)를 만난다. 서로에게 끌린 둘은 달콤한 첫 키스를 하지만, 그 키스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롤랜드가 (키비가 속해 있는 줄도 모르고) 와리킨을 혹평하고 비웃어서 둘 사이의 썸은 그 자리에서 바사삭 깨져 버린다. 롤랜드는 이를 수습하기 위해 와리킨의 공연을 보러 가고, 키비에게는 이 밴드에서 썩히기에 아까운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버지의 밴드를 떠나 더 넓은 세상에서 그 재능을 펼쳐 보라고 설득하기 시작하는데…

영화 제목처럼 ‘세 번의 여름’ 동안 두 남녀가 등나무처럼 얽히고설키는 이야기. 나는 영드 <Misfits(미스피츠)>(2009-2011)를 봐서 로버트 시한이라는 배우를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보니 반가웠다. WA(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주)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의 진행자인 퀴니라는 캐릭터는 호주의 국민 시트콤 <Kath & Kim(2002-2007)>에서 샤론 역을 맡은 마그다 즈밴스키였다! 역시 너무 반가웠다.

각설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흔하게 보이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비는 명랑하고 밝고 긍정적인 인물인데 반해, 롤랜드는 오만하고, 비사교적이며,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늘 이런 식인 걸까? 여주인공은 캔디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마음 따뜻하며 상냥한데 남주인공은 (비록 나중에 여주인공의 사랑에 감화되며 변화한다 하더라도) 비호감인 성격이어야 한다는 무슨 규칙이라도 있는 건가? 남자는 비호감이어도 되고, 여자는 안 된다? 이건 단순히 이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에 관한 고정관념에 미디어가 얼마나 절어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다. <Gone Girl(나를 찾아줘)>(2014) 같은 작품들이 그렇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도, 여주인공이 전형적으로 ‘호감형’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물론 전형에서 벗어난 여주인공이라는 요소 단 하나만으로 작품이 성공했다거나 대단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그것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로 범위를 제한해 보면, 이런 전형에서 벗어나는 여주인공을 가진 작품이 몇이나 될까? 전형적인 여주인공의 성격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이성적이거나 야망이 있거나 냉정한 성격의 여성 캐릭터를 악역으로 등장시키는 수법을 쓰는 것까지 치면, 작품을 세다가 지루해져서 까먹을 지경이 될 거다.

덧붙여, 그렇게 거만하고 재수 없던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만나 감화받고 더 ‘호감형’으로 거듭난다는 이야기는 흔해빠졌을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유해하다. 여자들은 그렇게 성격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을 만나 고쳐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애초에 인격이 완성된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면 안 되는 걸까.

게다가 설정상 이 영화의 배경은 음악 축제인데, 음악을 별로 잘 쓰지 못한 것 같다. 배경 음악도 있고, 공연 장면이 있는 영화인데도 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곡이 하나도 없다. 키비의 공연 장면을 봐도 이게 정말 롤랜드가 말하는 재능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되고, 장면과 장면 사이에 넣는 배경 음악은 엉뚱하기 짝이 없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넣는 배경 음악이 이렇게 어색할 수가 있다고? 아, 사실 기억나는 노래는 딱 하나 있다. 고티에(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가 키비와 롤랜드가 소원해진 모습을 몽타주로 보여 주는 장면에 흘러 나왔는데, 섬세함이라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선곡에 (둘이 싸운 후니까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라고? 진심? 왜 아예 찰리 푸스(Charlie Puth)의 “We Don’t Talk Anymore”를 넣지그래) 배우들이 대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그 노래가 갑자기 뚝 끊기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에 음악을 적재적소로 잘 갖다 쓰면 영화뿐 아니라 영화 OST도 대박이 나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게 확실했다.

영화는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진과 아프가니스탄 출신 밴드의 이야기를 넣어 음악을 통한 화합, 평화, 우정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는 느낌을 준다. 느낌은 줬고 노력했다는 것도 알겠는데, 전반적으로 잘 만든 영화냐고 한다면, 글쎄…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뻔한 로맨스와 엉성한 음악 사용을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볼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냥… 보지 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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