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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Operation Fortune: Ruse de Guerre(스파이 코드명 포춘)>(2023)

by Jaime Chung 202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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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Operation Fortune: Ruse de Guerre(스파이 코드명 포춘)>(2023)

 

 

⚠️ 아래 영화 후기는 <Operation Fortune: Ruse de Guerre(스파이 코드명 포춘)>(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포춘(제이슨 스타뎀 분)은 특별 수사관으로, 네이선(캐리 엘위스 분)의 지시에 따라 아직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악당의 손에 들어가면 세계가 위험해질 물건 ‘핸들(the Handle)’을 되찾기 위한 작전을 전개한다. 현재 이 ‘핸들’을 가지고 있고 악당에게 팔아넘기려고 간을 보고 있는 브로커는 그렉(휴 그랜트 분)이란 자인데,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 포춘의 라이벌인 마이크(피터 페르디난도 분)가 계속해서 끼어든다. 포춘의 팀은 컴퓨터, 해킹, 그리고 온갖 테크에 능숙한 천재 새라(오브리 플라자 분)와 그의 뒤를 든든히 지켜 줄 명사수 JJ(벅지 말론 분), 그리고 그렉의 관심을 끌고 그에게 접근할 미끼 역으로 얼떨결에 영입된, 할리우드 스타 대니(조쉬 하트넷 분)이다. 과연 이들은 ‘핸들’을 되찾아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스타일리시한 범죄 영화의 거장인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든 스파이 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정말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전작의 세련됨이나 위트는 보이지 않는다. 가이 리치 영화는 등장인물이 범죄자이고 나불나불 말이 많아도 매력적이라는 점이 특징이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그런 매력이 없다.

일단 제이슨 스타뎀은 늘 자신이 했던, 실력 있고 남성미 넘치는 액션 캐릭터를 충실히 연기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 포춘이라는 캐릭터만의 매력은 딱히 없다. 가이 리치 감독은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되었을 때 각본을 다시 썼고, 또한 배우들에게 가능한 한 즉흥 애드리브를 하도록 많이 격려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사가 그다지 재미있진 않다. 극 중 설정이나 특정 등장인물(예컨대 악당 같은 인물들)을 주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데, 이렇게 모든 걸 다 설명해 주니 관객은 그냥 뇌를 빼고 보기만 하면 되니 재미가 없다.

이 영화의 홍일점인 오브리 플라자는 솔직히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다. 내가 제이슨 스타뎀을 좋아하긴 하지만 오브리 플라자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클릭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브리 플라자의 캐릭터도 딱히 매력적이진 않다. 나름대로 PC함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대니의 여자 친구 역으로 위장시켜 투입할 인물이 필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일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 넣었는데, 그렇다고 딱히 중요한 역할을 맡긴 건 아니다. 컴퓨터를 가지고 하는 건 뭐든 하는 역할인데, 솔직히 고작 이런 역할 주려고 오브리 플라자, 아니 그가 아닌 그 어떤 여배우라도, 갖다 썼나 싶다. 왜냐, 말이 좋아 컴퓨터 천재이지 이 캐릭터가 하는 일은 그냥 컴퓨터 시스템이나 마찬가지고 (예컨대 포춘네 팀이 투입된 건물의 CCTV를 해킹해서 보면서 몇 시 방향에 마이크의 요원들이 있다, 어디로 가라, 뭐 조심해라 하고 말해 주는 일) 이런 일은 늘 여성이 해왔던 ‘이차적인(secondary)’ 비서 역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를 갖고 노는 완전 멋진 천재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타이피스트들이나 NASA의 ‘인간 컴퓨터’들을 떠올려보시라. 지금은 거의 다 사라졌지만 타이프라이터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이 최신 문물을 배워서 남성 중역들의 일을 ‘보조’한 것도 여성이고, 위성을 쏘아 보내기 위해 해야 하는, 헤아릴 수 없이 길고 복잡하며 정밀해야 하는 계산을 한 것도 여성이었다. 이 여성들이 한 일이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여성의 일은 (남성의 일에) 부차적인 것으로, 따라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 트렉(Star Trek)> 시리즈의 우후라(니셸 니콜스 분)는 무려 ‘흑인’ ‘여성’ 장교라는 설정 덕에 많은 흑인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멋진 롤 모델로 여겨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할은 고작 ‘정보 통신’ 장교였다. <Galaxy Quest(갤럭시 퀘스트)>(1999)에서 비슷한 설정의 캐릭터(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그웬 디마르코)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가 하는 일은 그냥 컴퓨터가 한 말을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게다가 <스파이 코드명 포춘>에서 새라는 ‘작전’을 위해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을 입고 대니의 여자 친구인 척 연기까지 해야 한다. 새라가 액션을 하는 모습? 거의 2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서 새라는 딱 한 번 권총을 쏘는 게 액션의 전부다(나머지는 모두 포춘이나 JJ가 한다). 자신을 따라오는 악당의 차에 총을 쏴서 그 차를 절벽으로 떨어지게 만들지만, 재장전할 총알이 없기에 그녀의 활약은 딱 거기에서 멈춘다. 솔직히 대니의 여자 친구인 척하는 임무만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를 까불까불한 이미지의 젊은 백인 남자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위화감은 조금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니 이 캐릭터가 멋있는 여전사라고, 잘 쓰인 여성 캐릭터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휴 그랜트의 악당 연기는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멱살을 붙잡고 없는 재미를 더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다. <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1998), <Snatch(스내치)>(2000), <Revolver(리볼버)>(2005) 같은 스타일리시한 액션물을 만들던 가이 리치는 어디 갔는가? 이건 그냥 그냥 그런 스파이 액션 영화에 불과하다. 가이 리치 감독의 명성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대했다면, 그 기대감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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